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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ACC재단)이 오는 6월21일까지 ACC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관에서 ‘침묵, 그 고요한 외침: 폴란드 포스터’전을 선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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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가지 키워드로 폴란드 포스터를 조명하는 ‘폴란드 포스터 키워드 10’ 섹션 전경. |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느낄 수 있는 것은 ‘침묵’이다. 화려한 영상이나 거대한 설치작품 없이 벽면을 채운 포스터들은 정적에 가까운 분위기를 만든다. 그런데 그 침묵은 조용하지 않다. 이미지들은 말을 아끼는 대신 더 강하게 응시하고, 함축된 상징과 은유를 통해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폴란드 포스터는 20세기 세계 디자인사에서 독자적 위치를 차지한다. 1950~1960년대 폴란드는 스탈린 체제 하에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엄격히 통제되던 시기로,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 발전한 폴란드 포스터 예술은 단순한 상업 디자인을 넘어 예술적 실험과 사회적 메시지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시대 속에서 예술가들은 직설 대신 은유와 상징, 풍자와 초현실적 이미지로 시대를 우회해 말하는 법을 익혔다. 검열을 피해가면서도 현실을 비틀고 풍자했던 이들의 작업은 결국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는’ 독특한 미학을 만들어냈다.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그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포스터 속 인물들은 얼굴이 지워져 있거나, 신체가 왜곡돼 있으며, 때로는 일상적 사물이 낯선 방식으로 결합돼 있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작품도 있지만, 상당수는 쉽게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다. 관람객은 이미지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되고, 자연스럽게 ‘왜 이런 형태를 택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설명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해석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이 전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폴란드 포스터 특유의 ‘불완전함’이다. 당시에는 회화 작가들이 포스터를 직접 손으로 그리거나 석판화와 오프셋 인쇄 기법을 통해 대량 생산했다. 거칠고 불균형한 감각은 시대의 긴장과 만나 인간의 불안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입구에서는 영화관을 연상케 하는 레드카펫 위로 폴란드 포스터학파를 이끈 10명의 주요 인물 얼굴이 관람객을 맞는다. 각 작가의 대표 포스터 이미지를 활용한 연출로, 전시가 단순히 포스터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시각적 장면으로 구성됐음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작품은 헨리크 토마셰프스키의 ‘폴란드 포스터 전시회’다. 폴란드 포스터학파의 리더로 평가받는 토마셰프스키가 독일에서 열린 폴란드 포스터 전시회를 위해 제작한 작품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과는 달리, 당시 미국과 서유럽에서 유행하던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아 함축적인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정면을 응시하는 커다란 눈 하나를 중심으로 초록 배경 위에 파랑과 노랑, 빨강, 검정 등 절제된 색채를 배치해 회화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포스터가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를 넘어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작품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발데마르 시비에르지의 ‘선셋대로’ 역시 인상적이다. 눈을 부릅뜬 채 메두사를 연상시키는 머리 모양을 한 여성이 담겼다. 왕년의 대스타가 재기를 꿈꾸며 집착과 환상에 빠져드는 영화의 내용을 반영하듯, 포스터 속 인물은 과장되고 왜곡된 얼굴로 표현됐다. 붉은 배경과 푸른 눈 화장, 검은 머리의 대비는 화려하면서도 불안한 정서를 동시에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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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샤바 거리 예술의 발자취’ 섹션에서는 폴란드 포스터가 부착됐던 1950년대 거리를 조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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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포스터 역사를 정리한 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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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기획을 맡은 이부용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1950년대 포스터가 실제로 부착됐던 바르샤바 거리를 재현한 섹션은 작품을 당시의 생활 공간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 포스터가 미술관 벽에 걸린 이미지가 아니라 도시의 거리와 일상 속에서 대중과 만났던 매체였던 점을 강조한다. 이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체제에서 제작된 포스터와 폴란드 포스터 연표등을 통해 전시의 역사적 맥락을 짚는다. 빅토르 고르카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에서는 폴란드 포스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마련돼 전시의 이해를 한층 넓힌다.
전쟁과 군사정권의 탄압 속에서 문화적 저항을 통해 자유를 갈망했던 폴란드의 역사는 1980년 5월 광주가 겪었던 시간과 맞닿아 있다. 직접 말할 수 없던 시대, 예술은 종종 상징과 은유를 통해 시대의 감정과 기억을 남겨왔다. 그런 점에서 검열과 억압 속에서도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한 폴란드 포스터의 우회적 표현 방식은 광주가 지닌 역사적 감각과도 깊이 공명한다.
글·사진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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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6 (수) 17: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