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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인백 한국인권교육원 이사장·전 광주여대 교수 |
예로부터 의향으로 불러온 광주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민주주의가 짓밟히면 언제나 선봉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오랜 역사는 차치하더라도 5·18민중항쟁 10일 동안 고립무원의 무정부 상태에서 은행이나 금은방 한곳 털리지 않았고, 질서를 지키며 주먹밥을 나누고 헌혈에 앞장선 대동 세상의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며 옥쇄했던 항쟁은 세계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교과서적인 위대한 항쟁이었다.
또한 항쟁의 주역들은 인고의 나날을 겪고도 오월정신을 지키며, 민주시민과 더불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한 투쟁으로 학살의 원흉인 전두환을 비롯한 일당들을 처단했으며,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까지 막아내고 오늘의 국민주권정부를 수립했다.
이제는 민주유공자가 되고, 항쟁의 중요지점은 사적지로 표시됐으며 기록물은 유네스코에 등재됐으나, 광주 시민을 지키고자 탱크를 앞세우고 진격해 온 계엄군을 막아내기 위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계엄군을 향해 걸어나갔던 수습대책위원들의 죽음의 행진에 대한 표석이 없다.
광주·전남엔 30곳이 넘는 사적지가 있지만, 이처럼 죽음의 행진으로 목숨 걸고 계엄군의 진입을 막아낸 역사적인 현장이 아직껏 사적지 표석이 없음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일명 죽음의 행진은 당시 총기의 회수 문제로 강온이 갈린 채 소강상태인 5월 25일 아침, 도청에서 일어난 독침 사건으로 도청은 공포 분위기에 동요되기 시작했고, 청년·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항쟁지도부는 재야 민주인사들의 동참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앰네스티 회원 중심의 재야 민주인사들은 YWCA 총무실에 모여 논의했으나 쉽게 결정을 못 내렸고, 남동천주교로 옮겨 김성룡 신부 주제로 계엄사에 요구할 ‘연행자를 전원 석방하고 책임을 묻지 마라, 학살 만행을 자행한 공수특전단은 처단해라, 모든 피해는 정부에서 보상하라’는 등의 요구사항이 관철되기 전엔 총기를 반납할 수 없다는 8개 항의 수습안을 결의했으며, 필자는 이를 기록하고 타이핑해서 인쇄한 다음 수습위원들과 그 수습안을 관철하고자 도청으로 들어갔다.
당시 도청은 독침 사건으로 전열이 흔들렸으며, 도청 지하엔 몇 년 전 이리역 폭발 사건 때보다 많은 TNT가 있었고, 이게 폭발하면 직경 4㎞의 시민들이 다 죽는데, 오열들이 이를 폭파하려고 한다. 계엄군들이 쳐들어온다는 등 긴박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모두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겠단 마음이었고, 필자 역시 나도 지킬 테니 총을 주라 했으나 학생수습위원장인 김창길이 자신들은 72시간 동안 잠을 못 잤지만, 눈에 골패를 끼고라도 지키겠다고 총을 안주자 이를 지켜본 김성룡 신부와 조비오 신부가 교회로 가서 상황을 말하고, 도청을 지킬 청년·학생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목사 한 분과 나갔다.
순간적으로 저녁을 먹고 오겠다고 나간 교수들도 안 들어오는데 성직자들까지 이런 핑계로 빠져나간다 싶었는데, 한참 후에 청년·학생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잠시나마 신부님들을 원망했던 마음이 죄송했으며, 이 상황을 듣고도 도청으로 들어온 청년·학생들이 하느님처럼 보였다.
시시각각으로 전해오는 급박한 상황에서 뜬눈으로 26일 새벽이 되자, 시 외곽에 있던 계엄군이 쳐들어온다는 시민군들 무선 연락이 빗발치자, 김성룡 신부가 ‘우리가 나가서 계엄군을 막읍시다 그래도 쳐들어온다면 우리가 총알받이가 되자’고 하자 그 누구도 반대한 사람 없이 도청에서 농성동까지 4㎞를 죽음을 각오하고 진격해 온 계엄군을 향해 걸어갔다.
일명 죽음의 행진은 지금의 서구청 부근에서 철조망으로 바리게이트를 치고 있던 계엄군과 대치하는 동안 도로변 건물에는 계엄군들이 앉아 쏴 자세로 우리를 총으로 겨누고 있었으나 우리는 끝내 계엄군의 시내 진입을 막아냄으로써 그곳은 오월항쟁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그날, 죽음의 행진을 했던 사람들은 전원 구속돼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치렀으며, 일부는 지명수배를 받다 유명을 달리했고, 이제 생존한 사람은 4명뿐인데 이들마저 죽으면 누가 역사의 현장을 증언하고 기억하겠는가!
위인백@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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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6 (화) 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