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예술의 문턱, 도시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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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문화리뷰] 예술의 문턱, 도시의 품격

전자광 (사)광주장애예술인협회 대표

전자광 회장
광주에서 서른 해 동안 붓을 놓지 않은 장애인작가가 있다. 그동안 그린 작품이 수백 점이다. 기량도 세월도 모자랄 것이 없다. 정작 아쉬운 것은 그 작품을 걸 자리다. 개인전 한 번을 열려면 대관료와 도록, 운송과 설치 비용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접근이 가능한 전시 공간은 손에 꼽히고, 그마저 일정이 차 있다. 서른 해의 축적이 창고에 머무는 일은 작가 한 사람의 손해로 끝나지 않는다. 그 그림을 볼 기회를 잃는 쪽은 우리다. 남도는 예부터 소리와 가락의 땅이다. 장애가 있다고 그 끼가 비껴가지 않는다.

진도에서, 목포에서, 담양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이들을 만난다. 문제는 설 무대가 없다는 것이다. 목포에서 광주까지 나오면 하루를 꼬박 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그렇다치자. 다른 점은, 하루를 버리고 나와도 오를 무대가 없다는 사실이다. 연습할 공간도, 반주도, 음향과 이동 지원도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조금만 뒷받침하면 훨씬 멀리 갈 사람들이다. 무대에 서는 횟수가 쌓이면 기량이 오르고, 기량이 오르면 밖으로 나간다. 장애예술은 이미 국제 무대에서 당당한 장르가 되었다. 남도의 소리를 가진 연주자가 그 흐름을 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만 지금은 첫 무대가 없어, 재능이 조용히 사그라든다. 이 이야기를 딱한 사연으로 읽지 않았으면 한다. 몇몇의 사정이 아니라 제도의 공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2020년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법률이 만들어졌고, 그 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책무를 맡겼다. 문화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라는 선언이었다. 다만 선언 이후가 더디다. 법은 말했으나 그 말을 담을 그릇이 지역에는 아직 없다.

나는 이 문제가 광주에서 특별히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광주는 인권을 도시의 이름으로 삼아 온 곳이다. 그런 도시의 품격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가장 먼저 배제되는 이들이 어디쯤 서 있는지로 드러난다. 장애인이 관객석에 앉을 수 있는가를 넘어, 무대와 전시장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인권 도시는 절반의 인권 도시다. 문화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예술은 다른 몸과 다른 감각이 세계를 어떻게 겪는지 보여줄 때 넓어진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그리는 빛, 들리지 않는 사람이 짓는 리듬, 느리게 움직이는 손이 만드는 선은 우리가 가진 적 없는 시야를 선물한다.

장애예술은 누군가를 돕는 일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미개척지를 여는 일이다. 돕자는 말로는 이 가치를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광주와 전남이 하나의 특별시로 나아가면서 많은 것이 새로 그려지고 있다. 조직과 조례, 예산의 구조가 지금 짜이는 중이다. 제도가 새로 설계되는 시기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다음 기회를 오래 기다려야 한다. 이미 지어진 건물에 방 하나를 더 넣기는 어렵다. 설계 단계에서 함께 그려야 한다. 더구나 장애예술을 위한 공간은 대부분 수도권에 있다. 광역 단위에서 창작과 발표, 교육과 유통을 잇는 거점은 여전히 드물다. 광주의 작가에게는 거점이 없고, 전남의 작가에게는 그 없는 거점마저 멀다.

전남광주장애예술인지원센터를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주를 거점으로 삼되 전남의 권역을 함께 잇는 구조여야 하고, 작업 공간과 발표 기회, 접근성 지원과 교육, 유통을 한자리에서 다뤄야 한다. 무엇보다 운영에 장애예술인 당사자가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당사자 없이 만들어진 기관은 당사자를 위한 기관이 되지 못한다. 시민들께는 다른 부탁을 드리고 싶다. 예산과 조례는 행정의 몫이지만, 예술은 보는 사람이 있어야 완성된다. 전시장에서 작품 앞에 서 주시는 일, 공연장에서 박수를 쳐 주시는 일. 그 평범한 행위가 한 작가를 계속 작업하게 만든다.

오는 10월 26일 광주시의회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정책포럼을 연다. 국회와 의회, 장애예술 분야 기관과 광주·전남의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요구를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설계를 시작하는 자리로 만들고자 한다. 문턱을 낮추는 일은 누군가를 들여보내 주는 일이 아니다. 그 문턱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세계를 되찾는 일이다. 통합특별시가 그리는 새 설계도에 그 자리를 함께 그려 넣기를 바란다.
전자광 gn@gwangnam.co.kr         전자광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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