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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
지난 4월 26일부터 27일까지 민들레소극장에서 열린 ‘지정남의 오월 1인극 환생굿’ 홍보물에서 옮긴 글이다. 작은 소극장을 가득 채운 배우의 열연과 ’비손‘의 마음을 함께 모은 관객들의 호흡이 탁월했던 공연, ’환생굿‘. 배우 지정남이 연기뿐 아니라 기획, 극작, 연출까지 혼자서 다 작업한 진짜 1인극이다.
어디서 지원을 받았다는 흔적도 없다. 그동안 ‘놀이패 신명’에서의 공연 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며 겹겹이 쌓아 놓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고민을 풀어 내자 마음먹고 사비를 털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 기획·극작·연출·출연을 혼자서 한 지정남은 1980년, 광주에 함께 ‘있었지만, 사라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찾고 다듬어 무대에 올렸다.
“시민군들에게 주먹밥과 물을 올려주고, 마스크와 검정리본을 만들고 상무관에서 시신을 지키며 헌혈에 동참하고, 가두방송과 투사회보를 나르며 함께 구호를 외치던 수많은 광주 여성들이 있었다. 5월 27일 도청 진압 이후, 신군부 독재정권은 항쟁에 참여했던 여성 100여 명을 광산경찰서 유치장에 감금하고 생리대조차 지급하지 않았으며 감금 기간 동안 투옥된 여성들은 모두 행방불명 처리되었다.”
군사 독재의 감시와 세상의 편견으로 어떤 이는 스스로 이름을 지우고 살았고 어떤 이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한 맺힌 생을 마감한 ‘있었지만, 사라진’ 여성들을 위로하기 위한 작품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지정남의 글이다.
‘있었지만, 사라진’ 그녀들의 흔적은 5·18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에도 여럿 살펴볼 수 있다. 황석영·이재의·전영호가 저술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젊은 여자 한 명이 하얀 양말 수십 켤레를 가지고 와서 시신의 맨발에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신겨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여자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 하지 않았으나 알려진 바로는 술집 접대부였다고 한다. 그녀는 입관할 때 물을 떠다가 직접 시신의 얼굴들을 정성스레 씻어주기도 했다.”
지정남은 민주화 운동의 이면에는 평범한 시민 영웅들이 자리한다는 점에 천착해서 작품의 얼개를 짰다. 작품의 소재는 전라도 씻김굿. 망자를 천도하기 위한 전통 굿의 주요 모티브들이 ‘환생굿’으로 연결된 것이다.
작품을 이끄는 주인공은 ‘초짜 무당’ 고만자다. 그녀의 입을 빌자면 굿이 “그라고 좋아” 굿판을 쫓아다니다, 종국에 화순능주씻김굿 보유자 문하에 들어 굿을 전수받고 드디어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전라도 굿판에서 무당의 필수 덕목인 굿소리에 자신이 없던 고만자는 망자의 씻김굿을 넘어 환생굿을 한다는 기상천외한 영업전략을 펼친다.
첫 번째 손님은 오뚜기 식당 사장 김윤희. 건물 청소원으로 일하다 쓸쓸하게 죽은 친구 변미화의 환생을 의뢰한다. 이 둘은 1980년 5월,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나누어주고, 함께 구호도 외쳤다. 계엄군의 총에 맞은 부상자 치료에 피가 모자란다는 소식을 듣고 헌혈에도 동참하며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을 함께 지켰던 이들이다. 하지만 술집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잊힌 존재가 되어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고만자, 김윤희, 변미화 모두 여성들이다. 역사의 현장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여성들의 자화상인 셈이다. 작품을 만들어 낸 지정남 역시 여성이다. 그녀에게도 여성이기에 남몰래 흘렸을 삶의 생채기는 어느 한 편에 남아 있으리라.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서사에 관심을 기울이며 자신의 삶에서 끌어올린 철학적 사유를 여러 작품에 ‘아주심기’하고 있다.
자칭 ‘전라도 전지현’, 타칭 ‘말바우 아짐’으로 통하는 대체 불가능한 지역 대표 배우인 지정남. ‘환생굿’은 전라도 지역을 넘어 서울 모노 페스티벌 참가작으로 서울 삼일로 창고극장에 오른다. 연이어 2024 마당극50주년 기념공연으로 부산 무대까지 바쁜 공연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어쩌면 그에게는 연극인, 방송인이 아닌 천상 광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광대라는 말처럼 넓고 크게 자신의 예술 영토를 개척해 나가길….
앞으로도 그녀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