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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호 시인·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
문학의 위기를 오래전부터 이야기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문단의 노력도 헛되어가는가 싶다. 인구 감소로 인해 언젠가는 지역은 물론 국가마저 소멸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문학 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사회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절망하게 하는 징후들은 수없이 많다. 학교에서부터 문학을 소홀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아이들도 점점 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는 추세이다. 문학이 대학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책은 읽어야 하는 수고가 아니면 문학을 향유할 수 없다는 게으름도 한몫한다. 드라마, 영화, 만화, 게임은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우선 재미가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드라마, 영화, 만화, 게임은 물론 스토리가 있는 것의 근본은 시나리오, 즉 문학이다. 문학이 없다면 오늘 우리가 향유하는 즐거움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음악의 노랫말조차 문학에 기댄 바가 크다.
최근 모 문화 기관에서 개최한 문학행사는 한국문학사에 크게 기여한 문학인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 행사에 많은 문학인과 지역민이 참여한 것은 고무할 일이지만, 그러나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행사 말미로 예고된 어느 이름난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가수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이 가수는 요즘 인기가 올라 각 지역에서 한창 벌이는 여러 축제에 불려 다니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무대에서 재롱을 피우며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어린 가수 또래의 정서와는 전혀 딴판인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행사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내내 나는 무척 마음이 불편하였다. 한껏 치장하여 멋을 부린 모습도 어린아이답지 않았으며 어른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그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도 많아졌다.
물론 요즘 어린아이들에게 우리 기성세대가 불렀던 동요를 부르라고 강요하는 것도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아이들에게 알맞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다. 많은 아이들이 가수가 되고자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반드시 누려야 할 동심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한 인간으로서 나이에 맞는 정서를 체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성인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과연 동심의 세계를 얼마나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동화책을 읽는 아이들 또한 얼마나 될까? 어려서부터 성인가요가 지닌 정서에 빠져 동심 세계를 체험하지 못하고 성인의 정서에 함몰된 아이들이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는 것은 괜한 기우일까?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낡고 진부한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알맞은 정서와 지식을 체험해야 한다. 성인이 되어 유아기의 정서를 체험하게 된다면 쉽사리 감동과 깨달음, 그리고 정서를 공유하기 어렵다. 나이에 알맞은 보편적인 정서적 체험을 했을 때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정서적 체험의 중심에는 앞에서 지적한 모든 문화의 근본이 되는 문학이 있으며, 이를 향유하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나이에 알맞은 정서 체험과 지혜를 쌓음으로써 온전하고 보편적인 인간으로 자랄 수 있다.
예로부터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했고,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였지만, 어른들도 책을 읽지 않으니 아이들도 책을 읽지 않고 왜곡된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요에 관심을 가지고 꿈을 키우는 우리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하게 이상한 일이다. 문학 행사에, 그것도 문학인을 추모하는 자리에 어린 가수를 불러 노래시키고, 문학에 관한 관심보다 어린 가수의 재롱을 볼모로 하여 어른들을 끝까지 붙잡아 두는 일은 참으로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