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하느님, 탄핵정국서 전국에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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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

광주의 하느님, 탄핵정국서 전국에 보여주고 싶었다

김준태 시집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생명과문학서 재출간
제5부로 구성 43년 만에 양장본 제작 ‘감꽃’ 등 69편 수록
삶의 시학 단초…"시는 독자의 알몸뚱이 부둥켜안듯 써야"

43년만에 재출간된 시집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1980년 7월 31일
저물어가는 오후 5시
동녘 하늘 뭉게구름 위에
그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이
앉아 계시는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
몸이 아파 술을 먹지 못하고
대신 콜라로나 목을 축이면서
나는 정말 하느님을 보았다
나는 정말 하느님을 느꼈다

1980년 7월 31일 오후 5시
뭉게구름 위에 앉아 계시는
내게 충만되어 오신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
그런 뒤로 가슴이 터질 듯 부풀었고
세상 사람들 누구나 좋아졌다
내 몸뚱이가 능금처럼 붉어지고
사람들이 이쁘고 환장하게 좋았다
이 숨길 수 없는 환희의 순간
세상 사람들 누구나를 보듬고
첫날 밤처럼 씩씩거려 주고 싶어졌다
아아 나는 절망하지 않으련다
아아 나는 미워하거나 울어 버리거나
넋마저 놓고 헤매이지 않으련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라면 피라미
한 마리라도 소중히 여기련다
아아 나는 숨을 쉬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하찮은 물건이라도
입 맞추고 입 맞추고 또 입 맞추고 살아가리라
사랑에 천 번 만 번 미치고 열두 번 둔갑하여서
이 세상의 똥구멍까지 입 맞추리라
아아 나는 정말 하느님을 보았다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전문

위 시는 올해 문단 데뷔 55년을 맞이한 전남 해남 출생 김준태 시인의 제2시집에 수록됐다.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욕에 눈이 멀어 계엄군을 내세워 광주시민들을 무고하게 학살한 5·18항쟁의 참혹한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81년 12월 한마당에서 나온 시집 속에 수록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라는 작품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잃어서는 안된다. 인간성이란 바다와 같은 것이어서 설령 바닷물의 한쪽이 더럽힌다 해도 그 바다 전체가 더럽혀지지는 않는 것이다’라는 부제글이 붙은 이시는 라이너 마리아릴케가 하느님의 존재를 노래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대개 하느님의 존재를 자각했던모세의 ‘IamwhoIam’(나는나다) 혹은 니체의 ‘Gottisttot’(신은 죽었다)라고 하는 대명제를 전제하며 역설적으로 유신론자도,무신론자도 아니라면서 접신(엑스터시)의 세계와 체험을 18일 간담회 자리에서 설명했다.그러면서 시인은 하느님의 규정을 인간의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것이고,설명되어지면 그것은 우상일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시인은 “하느님은 우리를 죽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모두 살려주는 사람으로 광주의 하느님을 탄핵정국에서 전국에 보여주고 싶었다”면서“몸 속에 모든 종교가 있고,4억5000만년의 DNA가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1981년 초판 시집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김준태 시인이 1981년 초판을 펴낸 뒤 43년만에 재출간된 시집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은 1981년 한마당에서 나온 초판 시집과 지난 10일 재출간된 시집(왼쪽).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가 현정부의 45년만에 비상계엄 발동으로 인해 전국민에 또 다른 공포를 안긴 시점에서 5·18항쟁의 한복판에 선 당사자로 느끼는 소회가 읽힌다. 작금의 비상계엄이 자행된결과 맞은 탄핵정국과 하느님의 사랑이 온누리에 끼쳐지는 성탄절을 앞두고 43년만에 양장본 160여쪽 분량으로 시집 ‘나는하느님을보았다’(생명과문학刊)가 이달 재출간됐다. 이번 재출간된 시집은 1980년 5월부터1981년 5월까지 창작한 작품들이 수록됐다.1980년 광주오월항쟁 전후 온몸에 새겨졌던 계엄트라우마가 작금의 비상계엄으로 인해 박제가 다시 풀리면서 시인의 이번 시집은 문단 안팎에서 계엄 고통이 얼마나 큰 트라우마인지를 일깨운다는 반응이다.

이 시집은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를 비롯해 ‘초가’, ‘장타령-살풀이’, ‘식물성 장시-지리산 여자’, ‘보리밥’ 등 제5부로 구성됐으며, 1977년 창비에서 나왔던 첫 시집의 표제 ‘참깨를 털면서’와 ‘지리산 여자’, ‘콩알 하나’, ‘감꽃’ 등 69편이 실렸다.

이를테면 수록시 ‘지리산 여자’는 원래 ‘무등산 여자’였다. 당시 무등산이라는 용어 자체가 금기시돼 민족혼란기에 커다란 아픔의 현장으로 남은 지리산을 차용해 형상화했다. 지리산 800리 안에서 3만명이 스러져간 곳이기 때문이다. 그를 상징하는 대표시가 된 ‘아아 광주여,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작품에서 무등산이 나오는데 그 무등산을 본 계엄군 검열관이 ‘너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고 하는 소리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시인은 5·18 비상계엄 아래 신군부의 만행을 전국에 알리는 등 굴곡지고 부조리한 시국을 정면으로 관통했던 시 ‘아아 광주여,우리나라의 십자가여’로오월문학의시발점 역할을 했던 장본인이다. 그가 느낀 12·3 비상계엄은 44년 전 5월의 학살트라우마를 일깨운 계기가 됐다. 그는 광주오월을 통해 '이 세상 걸어갈 길을 찾았다'고 술회한다. 오월이 아니었다면 길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길에 대해 희망이자 사랑이라고 밝힌다. 그만큼 광주오월은 그의 삶 전부가 된 셈이다. 그래서 그를 천상 ‘오월의 시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시인은 서문을 통해 "시는 독자의 알몸뚱이를 부둥켜안듯이 뿌드득뿌드득 써야 한다. 시는 인간성을 신뢰할 때, 더욱 희망이다. ‘참깨를 털면서’ 이후 두번째 시집을 엮다 보니 생각이 고르지 못하고 내가 보기에도 못마땅한 것이 많이 끼어 있음을 알았다. 이런 점을 잊지 않고 좋은 노래, 좋은 생각을 해가며 살까 한다"고 밝혔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당시 표제를 통해 문학평론가 김치수 전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는 이 시집에 대해 “자연으로 표현되고 있는 시인의 고향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든가, ‘달이 뜨면 그대가 그리웠다’라든가 등 무수한 시편들에서 확대되고 있다”면서 “시인은 고향의 사물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고향을 만나며 그 고향을 통해 사람에 대한 사랑에 도달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 대한 사랑없이는 고향을 찾을 수 없고, 하느님을 볼 수가 없는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또 김윤환 시인(백석대 대학원 기독교문학 교수)은 "시인은 내재된 하늘과 영육의 일체를 노래할 뿐 아니라 시와 인간, 세계와 생명을 유기적 관계로 풀어낸다. 이번 시집은 문학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면서 "자칫 사라질뻔한 역사적 시집을 복간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고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 시집은 제도적 종교의 관념을 넘어 문학적 기교를 초월하는 생명시학의 단초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선주기자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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