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장르 넘나들기…시·사진·판화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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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

이웃장르 넘나들기…시·사진·판화가 만났다

문인들 타장르와 콜라보…시화집·시판화집 잇단 출간
김경윤 김인호 박노식 시인 등 직접 다른 장르와 융합

문단을 중심으로 이웃 장르 작가들과의 협업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가 하면, 시인이 산문집을 내기도 하고, 산문가가 시집을 내기도 하는 등 협업과 타장르 작품집 출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기존에는 김황흠·김휼 시인이나 엄수경 아동문학가 등이 이미 사진집을 펴낸 바 있으며, 엄 작가의 경우 아예 목요사진 활동을 펼치면서 아동문학과 사진이라는 두 집 살림을 병행해나가고 있다. 광주문단에서는 이런 흐름에 기반한 작품집이 잇따라 출간돼 향후 다른 문인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되고 있다. 최근 들어 김인호 시인을 비롯해 김경윤 시인(김남주기념사업회 회장), 박노식 시인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먼저 전남 해남 출생 김경윤 시인은 시화집 ‘그대 땅끝에 오시려거든’을 문학들에서 출간했다. ‘세 개의 눈으로 보는 땅끝 해남’이 부제로 붙었다. 땅끝이 갖는 중의적 의미가 다채롭듯 그의 시화집에는 시인의 마음의 눈이 잡아낸 예리한 감각과 사진가들이 앵글로 잡아낸 일상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사진은 고금렬 김총수 민경 박흥남씨 등이 참여했다. 해남 땅끝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 더없이 중요함을 부각시킨다.

‘신발장 위에 늙은 신발들이 누워있다’(‘신발에 대한 경배’)고 바라본 시인의 문장들은 시인이 아니면 구사될 수 없는 문장들이 시화집 곳곳에 놓여졌다. 그의 마음의 눈이 빚은 작품들인 셈이다. 이런 작품이 시화집에 수두룩하다. 고재종 시인은 “오늘날 자본과 정보에 찌들어 사는 우리 인간의 본래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평했다.

‘신발에 대한 경배’를 비롯해 ‘백방포에 들다’, ‘달마산 편지’ 등 제3부로 구성됐으며, 분주한 일상 속 틈틈이 창작한 시 50여편이 수록됐다.

시인은 머리말에서 “마음은 정처없고 초로의 쓸쓸한 가을날 평생을 신발의 행자로 살아온 남루한 내 시(詩)를 데리고 그대에게 간다”면서 “남세스럽지만 그대 땅끝에 오시려거든 눈과 마음과 렌즈 이 세 개의 눈과 함께 어설픈 행자의 노래를 챙겨 오라”고 밝히고 있다.

이어 광주 출생 김인호 시인은 오래 전부터 본업인 시(詩) 외에 사진활동을 활발하게 전개, 사진작가로 이력을 더해 왔다. 그는 지난달 포토에세이 ‘나를 살린 풍경들’을 시와에세이에서 펴냈다. 표제 ‘나를 살린 풍경들’이 암시하듯 그에게 닥쳐온 지난한 삶에 대한 희망일기로 읽을 수 있다. 근래 10년 동안 그는 위기의 삶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해 구례로의 귀촌, 퇴직, 아이들의 결혼 그리고 암 투병 5년 등 아슬아슬하고 가파른 생의 점점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이런 삶으로부터의 해방구는 섬진강변이었고, 그 섬진강변을 누비면서 카메라 앵글에 담아내며 세상 및 자연과 내적 소통에 나섰다. 때로는 깨달음의 소통 그 자체였다. 소통의 피사체들이 그의 감각과 사유를 통해 그 어떤 풍경보다 더 삶을 증언해주는 장면 장면들을 기록해 갔다. 그가 담아낸 피사체들에는 시인의 감각으로 다시 기워지면서 삶의 사계를 담아냈다. 풍경이 삶 안으로 들어와 그의 삶의 향방을 다시 붙잡아주는 존재가 된 것이다.

복효근 시인은 이번 포토에세이에 대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야 하며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종국에 돌아갈 육신과 정신의 귀의처가 어디인가 묻고 있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2015년 늦깎이로 등단했던 광주 출생 박노식 시인은 전남 화순 출생 판화가 이민씨와 손을 잡았다. 시와 판타블로라는 독창적 기법이 구사된 판화가 만났다.

‘시인과 화가의 눈으로 본 소소한 매력’이라는 주제로 ‘제주에 봄’을 스타북스에서 펴냈다. 전남 화순 한천면 가천마을에 머물며 오직 시만 쓰는 박 시인과 경기도와 제주를 오가며 판화 작업을 펼쳐온 이민 판화가가 제주의 감성을 불어넣어 만든 삶의 스토리로 이해하면 된다.

‘아침 햇살은 간밤의 고통이 낳은 눈부심’이라고 노래하는 시인의 감성에 화가의 ‘쇠소깍 일출’이라는 감각이 더해져 작품이 예리해졌다. ‘하나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은 악몽 하나를 깨우는 것과 같다’고 감성을 발현한 시인의 감각에 화가는 ‘위미해안도록106’을 디밀었다. 둘의 조화가 시판화집 곳곳에 펼쳐진다. ‘저녁 하늘은 적막 속에 닻을 내린 시인의 눈빛’이라고 노래하는 시인의 감성에 ‘동복리 마을’이라는 감각이 작품에 몰입시킨다.

박노식, 이민 작가는 프롤로그를 통해 “시와 그림을 그리는 두 사람이 만나서 세상에 하나뿐인 책을 낳았다. 제주는 슬픔의 섬이고 예술적 상상력의 바다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곳의 아포리즘과 그림이 독자들에 위로가 됐다면 독자들과 우리는 한 수평선에 누워서 낮의 흰 구름과 밤의 푸른 별을 함께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소회를 드러냈다.

김경윤 시인의 시화집에서 만나는 사진들은 좀 더 삶과 밀착된 일상의 소소한 풍경들로 접근할 수 있는 반면, 김인호 시인의 풍경은 아득하고 아스라한 전경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박노식, 이민 두 예술가가 펴낸 시판화집은 활자와 시각예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시와 판화를 감상하는 재미가 배가된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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