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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번 소설집 ‘화담’(다시문학 刊) |
그래서 그의 소설들은 상처의 대척점에 있는 치유까지 조망하게 만든다. 상처가 있어야 치유가 있다는 기본적 시각이 놓여 있다. 치유는 자신의 안에서 상처를 씹고 씹어서 달아질 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때로 우리는 타자의 공감이나 지지로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아픈 기억들은 아무도 나를 위로할 수 없다. 온전히 나만이 위로할 수 있는 슬픔이 있다. 그러므로 나로부터 출발해서 내 안에서 끝나는 치유야말로 가장 온전한 치유라고 생각한다. 특히 작가는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를 통한 ‘희망찾기’를 모색하는 동시에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 모든 고통이 아마도 자기 자신을 통해서 달래진다는 것을 희미하게 깨달아 가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이를 뒷받침한다.
깊은 막장의 심연에서 채굴해 올린 그의 언어는 유독 꽃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한다. 이는 그녀가 하릴없이 마주하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실낱같은 염원을 강렬하게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힌다. 또 그 쓰디쓴 진창에서 피어난 꽃 같은 언어들이 현대인들의 영혼을 어루만질 것이다. 겉으로는 무심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지만, 강렬한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소설집은 강력한 최면제로 삶을 위로한다.
그의 글은 상처를 남기는 가시처럼 독자의 마음 깊숙이 박히고, 한 번 찔린 마음을 잊을 수 없다. 그의 글은 생생하게 아스라한 슬픔과 연민 그리고 여운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는 평가다.
작가는 이번 소설 출간을 맞아 먼 길을 돌아와 읽고 쓰기의 수난을 감수하면서 백지에 문장을 쏟아 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자신에게 쓰는 일은 어느새 하고 싶은 것들에서 우선순위가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글쓰기의 삶이 가진 진의를 고유한 인장으로 자연스럽게 새기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의 여정에서도 지치지 않고 부지런히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하여 오래전부터 꿈꾸던 솟대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면서 “책이 가진 운명에 따라 그 누군가에게 가 닿았을 때 부디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경험만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번 소설집에는 ‘마침내 서서히, 빈 집’, ‘사우다드’, ‘화담’, ‘진홍토끼풀밭에 밤이 내리면’, ‘연화, 마주치다’, ‘너를 기억한다’, ‘굿문, 시인의 까망 이슬’ 등 7편의 단편이 실렸다.
소설가 경번씨는 충남 서천 출생으로 안양예고를 거쳐 광주여대 및 동대학원, 국민대 대학원 등을 졸업, 글쓰기·문학·독서·영화·사진(통합매체)을 활용한 심리상담을 가르치면서 상담사이자 치유사로도 활동 중이다. 1995년 한국여성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20년 ‘문학과의식’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소설 동인집 ‘신소설’에 작품을 발표했고, 2024년 김포문화재단 예술활동창작기금을 수혜받았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