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 유학교육 성균관, 친일파 소굴로 변질"

경학원 설립 114주년을 맞아 3일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식민지역사박물관 명예관장인 심정섭씨가 제작 연대가 1920년대로 추정되는 친일 유림 유묵첩 ‘장수여묵’을 공개했다. 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조선의 유학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이 한일합방 이후 경학원으로 격하돼 친일파 소굴이 된 사실이 문서로 공개됐다.

성균관 유림들은 국권 회복에 앞장서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일제 총독부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찬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3일 경학원 설립 114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식민지역사박물관 명예관장인 심정섭씨(82·광주 북구)가 공개한 친일 유림 유묵첩 ‘장수여묵’의 제작 연대는 1920년대로 추정되며, 크기는 가로 15㎝ 세로 25㎝다.

조선 말기까지 최고 교육기관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성균관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조선총독부령 제73호 경학원 규정에 따라 1911년 6월15일 경학원으로 개칭된다.

경학원으로 이름이 바뀐 뒤에는 일본 천황의 하사금으로 설립, 조선총독부 식민 정책에 부합하는 교육기관으로 전락했다.

이는 조선총독부의 감독 아래 조선인을 충량한 황국신민화로 만드는 데 유교를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계절에 따라 유교 제사를 지내면서 강연회를 개최하고, 조선 13도에 감사를 파견해 식민통치를 정당화했다.

실제 1915년 경학원 함경남도 강사 이인직(1862~1916)은 순회강연에서 “조선인은 일본정신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면서 일선동화를 주장했다.

심 명예관장이 공개한 유묵첩 ‘장수여묵’의 주인공은 중추원 조사과 촉탁 장해원(1873~?), 중추원 참의·경학원 강사 심선택(1871~1943), 경학원 강사 위대원(생졸미상), 경학원 강사 지완수(생졸미상), 경학원 강사 나일봉(1871~?), 경학원 사성 박치상(1866~1918), 경학원 강사 송시헌(1878~?), 경학원 강사 정문현(1860~?), 경학원 강사 황돈수(1868~1945), 경학원 강사 한창우(생졸미상), 경학원 강사 성락현(1876~1936) 등 11명이다.

유묵첩 제호인 ‘장수어묵’은 경학원 대제학 정만조(1876~1936)가 썼다. ‘장수어묵’은 군자가 학문을 배우는데 마음이 항상 학문에 떠나지 않아 붓끝에 먹물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정만조는 1889년 문과에 급제하고 비서원승(도승지), 규장각 부제학을 역임하고, 1896년 을미사변에 연루돼 전남 진도에 유배, 1907년 풀려났다.

그는 추사 문인인 개화사상가 강위(1820~1884)에게 배운 한말의 거대유림으로, 진도 유배 기간 동양화 대가인 의제 허백련을 가르쳤다.

유묵 ‘장수어묵’에는 △대한제국 성균관 박사·중추원 참외 경학원 전남강사·1928년 쇼와천왕 즉위기념 대례장을 받은 심선택의 ‘유학자의 도리’ △대한제국 육군 대위·중추원 조사과 촉탁인 장해원의 ‘광분한 행동과 언행을 삼가해야 한다’ △대한제국 법부법률기초위원·경학원 한남강사 위대원의 ‘논어위령공편’ △경학원 사성·한국병합기념장을 받은 박치상의 ‘관리는 군주와 나라를 위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경학원 충북강사 송시헌의 ‘충신독경’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은 경학원 강사 정문현의 ‘책을 읽고 의리를 행한 후 도를 논하면서 나라를 경영한다’ △경학원 경기강사 황돈수 ‘마음’ △다이쇼천황·쇼와천황 즉위 기념 대혜장을 받은 경학원 충북강사 한창우의 ‘도의 근본은 하늘에서 나온다’ △경학원 강사 성낙현 ‘도의 근본은 하늘에서 나온다’ 등이 담겼다.

심정섭 명예관장은 “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고 인의를 근본으로 하는 정치·도덕의 실천을 주장하는 것이 근본 원리인데 일제시대 경학원은 친일 일변도의 길로 매진했다”면서 “장수여묵에는 친일 인사의 궤변이 나열돼 있으며, ‘아침에 도의 진리를 들어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설파한 공자의 정신을 부정한 행위였다”고 비판했다.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