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연극 ‘문턱’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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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연극 ‘문턱’을 보고

-묵직한 감정 새긴 연극 ‘문턱’의 단상들

노희용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광주의 극장에서 오랜만에 조용히 울고, 작게 웃으며, 돌아서는 연극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은 ‘문턱’,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90대 노인 여성 세 명이 죽음을 향해 가는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이었다. 무겁고 처연할 것으로 생각했던 내 예상을 뒤엎고, 이 연극은 의외로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러나 끝내 묵직한 감정을 남기며 무대를 닫았다.

이 작품을 올린 단체는 스튜디오 반이다. 2007년 연출가 이강선을 중심으로 창립된 공연예술창작집단이다. 그간 이들은 국가폭력, 사회문제 같은 묵직한 주제를 창작극이나 번역극(일본 작품 중심)으로 풀어내며, 진지한 문제의식과 예술적 치열함을 동시에 갖춘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선보인 ‘문턱’은 다르다. 이 작품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사람’의 언어로, ‘여성 노인’이라는 관점을 통해 조용히 꺼내 보인다.

무대에는 복잡한 구조도 없고, 고발성 대사도 없다. 대신 오랜 친구처럼 토닥대고, 자식들 자랑하고 흉도 보고, 옛 기억을 웃으며 회상하다가, 문득 조용해지고 어느날 누군가 사라진다. 그렇게 ‘문턱’은 슬픔과 코미디가 공존하는 진짜 삶을 연기한다.

나는 이 연극을 보고, 오히려 낯선 감정을 느꼈다. 이 낯섦은 무대의 구성 때문도, 배우의 연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광주에서 자주 접해왔던 연극들이 너무도 익숙하게 ‘기승전000’의 구조를 따라왔기 때문이다. 물론 광주의 역사적 정체성은 중요하다.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어떤 진실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념’의 이야기와 함께 ‘현실’의 이야기도 전개되어야 한다.

‘문턱’은 그런 점에서 어떤 조용한 선언 같았다. 삶은 이념보다 복잡하고, 죽음은 정치보다 깊다. 웃고, 싸우고, 사소한 갈등을 넘기며 결국 서로를 껴안는 인간의 이야기를 보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이게 우리 삶이다”라는 감정에 정직하게 머무를 수 있었다.

직업이 연출가인 사람이 이 작품을 봤다면, 아마 리듬과 간격의 연출에 주목했을 것이다. 정해진 갈등도 반전도 없이 흐르는 장면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건 오롯이 장면 구성의 리듬감이다. 이 작품의 연출가는 삶의 간격을 길게 늘여서 이해하는 방식으로 극을 구성했고, 그 안에서 삶과 죽음 사이의 온도차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배우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분장 너머의 감정 연기가 핵심이다. 배우들이 나이 든 노인을 연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외형적 모사보다 삶을 살아낸 시간의 무게를 내면으로 구현해야 한다. ‘문턱’의 배우들은 거기에 성공했다. 과장된 흉내가 아닌, 일상의 감정 결을 연기했고, 그 덕분에 관객은 노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났다.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제작자의 시선에서 이 연극은 ‘보편성의 가치’를 증명한다.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에서, 노인의 삶과 죽음을 다룬 이 극은 지역을 넘어 세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만든다. 무대장치나 조명, 음악도 심플했지만 기능적으로 효율적이었고, 작은 예산으로도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광주에서 연극은 흔히 역사와 투쟁의 무대였다. 이는 자랑스럽고 고마운 전통이지만, 동시에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갈 시점이기도 하다. ‘문턱’이 보여준 것은 이념에서 도망친 연극이 아니라, 이념 바깥의 또 다른 진실한 삶을 품은 연극이었다. ‘세 명의 엄마’가 등장하지만, 실은 수많은 우리의 엄마, 그리고 언젠가 우리 자신이 닿게 될 마지막 시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안에는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으며, 공감도 있다. 이제 광주의 연극이 더 많은 삶의 결을 품었으면 한다. 단 하나의 구호나 상징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과 감정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울림이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길 바란다.

나는 ‘문턱’을 보며 한참을 웃다가, 공연이 끝난 뒤 조용히 눈시울을 훔쳤다. 그건 누군가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그 죽음이 너무도 익숙하고도 인간적인 방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연극은 종종 큰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때로는, 이렇게 작은 이야기 하나가 더 오래 남고, 더 멀리 간다. ‘문턱’은 그런 연극이었다. 광주에서도 이제, 무대 위에서 이념이 아니라 인생이 연기되기를. 그것이 바로 지금 광주 연극이 넘어서야 할 ‘문턱’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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