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어촌 소멸 막을 기본소득법 제정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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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어촌 소멸 막을 기본소득법 제정 시급하다

이성일 사)남북민간교류협회 광주전남지부장
전국 각지에서 지방 소멸의 종이 울리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절반 이상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특히 농어촌 지역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지역 공동체의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근본적이고 대담한 대안으로 ‘농어촌 기본소득’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시범 사업이나 일시적인 지원 정책을 넘어 이 혁신적인 제도를 국가의 공식적인 제도로 뿌리내릴 때가 왔다. 그 출발점은 바로 ‘농어촌 기본소득법’의 제정이다.

현재 전국 지방 자치 단체에는 117건이 넘는 기본소득 관련 조례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재난’이나 ‘청년’과 같은 특수 상황에 국한된 일시적 현금 지원에 그치고 있다. 이는 지자체 단독의 재원으로는 지속 가능한 진정한 기본소득을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이러한 지자체의 시도가 중앙 정부와의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적으로 취약한 지자체가 기본소득을 추진할 경우 국가 전체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이는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일시적 실험’에 그치게 하며, 정책의 정당성과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농어촌 기본소득이 단발성 복지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강제력을 수반하는 법률이라는 틀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법제화를 통해 예산의 안정적 조달을 보장하고, 정권이나 단체장이 바뀌더라도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전국 모든 농어촌 주민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국회에서 기본소득 관련 법안이 발의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지금까지 총 9건의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그중 8건이 임기 만료로 폐기되는 등 제도화까지 가는 길이 험난했다. 22대 국회에는 이원택 의원이 대표 발의한 ‘농어민 기본소득법안’이 현재 계류 중이다. 이 법안들은 각기 다른 대상을 설정했지만(청년, 전 국민, 농어민),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향하고 있다. 바로 ‘조건 없이(무조건), 개인에게(개별성), 정기적으로(정기성)’ 소득을 지급하여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본권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라는 한국 사회의 급선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필요하다. 첫째, 대상 지역 선정에 있어 ‘면’ 지역부터의 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다. ‘농어촌’의 정의는 관련 기본법을 따라가되, 실질적인 도시화가 진행된 ‘읍’ 지역과 순수 농어촌인 ‘면’ 지역을 구분해야 한다. 지방 소멸 극복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인구 감소가 가장 심각한 ‘면’ 지역부터 시범 사업을 시작하고, 점차 조건에 맞는 읍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는 전략이 현실적이다. 2020년 기준 면 지역 인구는 약 470만 명으로, 집중 지원이 가능한 규모이다.

둘째, 재원 마련을 위해 기존 예산의 전환과 특별 회계 설립이 필요하다. 면 지역 주민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할 경우 연간 약 17조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이는 막대한 금액처럼 느껴지지만, 국가 균형 발전 특별 회계, 농어촌 발전 특별세, 지방 소멸 대응 기금, 재생 에너지 수익금 등 기존에 농어촌과 지역 발전을 위해 쓰이고 있는 다양한 재원을 통합·전환하는 방식으로 마련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농어촌 기본소득 특별 회계’를 설립해 재원을 안정화하고 관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주관 부서로는 행정 안전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단순한 농정이나 수산 정책이 아닌 ‘국가 균형 발전’과 ‘지방 소멸 대응’이라는 더 큰 그림의 정책이다. 따라서 농림 축산 식품부나 해양수산부보다는 지방 재정(지방 교부금), 주민 자치, 행정 체계를 총괄하는 행정 안전부가 주관 부서로 적합하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부처의 사업을 조율하고 종합적인 접근이 가능해질 것이다.

넷째, 실행 전략으로는 법에 근거한 전국적 시범 사업이 필요하다. 당장 전면 시행보다는, 법안에 시범 사업 실시 근거를 명시하는 것이 현명하다.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의 사례처럼 특정 지역을 선정해 효과와 파급력을 집중적으로 측정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를 수정·보완하며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합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다. 이는 사라져 가는 지역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고, 주민들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며, 궁극적으로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투자이다. 이 위대한 실험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확고한 법적 토대 위에 세워야 한다.

이제 중앙 정부와 국회는 각 지자체의 분산된 노력을 하나로 모아 국가적 사업으로 승화시킬 때이다. ‘농어촌 기본소득법’ 제정은 소멸 위기에 직면한 농어촌에 대한 약속이자, 대한민국의 균형 발전된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우리는 이 역사적인 기로에 서 있다. 과감한 법제화를 통해 농어촌의 미래를 구축하고, 더 나아가 전 국민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놓아야 할 때이다. 지방 소멸 위기가 심각한 지금, 하루라도 빠른 농어촌 기본소득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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