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현대판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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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권익위원 칼럼]현대판 중용

박봉순 동신대학교 지역협력본부장

박봉순 동신대학교 지역협력본부장
중용은‘사서오경’에속하는유교의대표경전으로,사람이세상을살아가는데지녀야할자세와태도를제시한철학이다.그러나오늘날일상에서‘중용’이라는말을사용할때는흔히이것도저것도아닌어정쩡함이나우유부단한태도를뜻하는말로오해되고,중용을말하는사람은‘줏대없는사람’으로치부되곤한다.

하지만본래중용이란어느한쪽으로치우치지않고,지나치거나모자람이없는상태를의미한다.즉상황에맞게말과행동을조율하고,적절함을판단하는절제의미덕이그속에담겨있는것이다.오늘날정치나사회의여러모습을돌아보면모든것이극단으로치닫고있어,오히려지금이야말로‘중용의철학’이절실히필요한시대가아닌가싶다.

조선개국이래다섯임금을섬긴명재상황희정승은6조판서를두루거친인물로,조선의행정체계를정립하고국가의기틀을다지는데크게기여했다.그는청렴과강직함,그리고실용적정치철학으로오늘날까지도존경받고있다.특히세종대왕을보좌하며지나치게앞서나가는세종의개혁정책을조율하고균형을잡아준그의태도는중용의전형이라할만하다.

황희는법과행정전반에서엄정함을유지하면서도현실적실용성을중시했고,세종이추진한공법(전답에세금을부과하는제도)을끝까지반대하며백성의삶을우선하는현실적관점을견지했다.세종과의협치와견제는조선역사상가장이상적인군신관계로평가받는다.

그런그를두고일부에서는‘우유부단한인물’이라고평가하기도한다.대표적인일화로두노비가다투자황희가“너도옳고,너도옳다”고말하자이를본부인이“줏대가없다”고꾸짖었고,그는“그말도옳다”고답했다는이야기가있다.그러나이는우유부단함이아니라,모든상황에서감정의충돌을피하고상대의입장을배려하는‘조화의미덕’을보여주는일화로읽어야한다.

또한어느날시골길을걷던황희가밭에서일하던누런소와검은소를본노비가“둘중어느소가일을더잘합니까?”라고묻자,그는작은목소리로“짐승도다알아듣는다.잘잘못을큰소리로말하면서운해한다”고답했다.짐승에게조차배려를베푸는그의태도는중용의정신이생활속에녹아있었음을보여준다.

이와같은중용의사상은비단동양의전유물이아니다.서양에서도플라톤은“어디서멈춰야하는지를아는것이최고의지혜”라하며,크기의양적기준이아닌가치의질적균형을중용으로보았다.아리스토텔레스또한“지나침과부족함은모두악덕이며,그사이의중간을찾는것이참된덕”이라고했다.

유교에서말하는중용역시현실속행실의최선의길을뜻하며,형이상학적사유에서출발해가치론적수양법으로확장된개념이다.이는‘절대적인중간값’이아니라상황과관계속에서조화를찾아가는‘상대적가치의실천’이라할수있다.

오늘날우리사회곳곳에서나타나는양극화현상을보면,국가의근간과민주주의의지속가능성이흔들릴정도로극단적대립이심화되고있다.“내가하면옳고,네가하면틀리다”는이분법적사고가정치권뿐아니라사회전반에스며들고있다.잘사는사람과못사는사람,배운사람과배우지못한사람을가르고서로를적대시하는현실은참으로안타깝다.

이같은현상은사회지도층의내로남불적태도에서비롯된측면도크다.공익보다정파의이익을앞세우는정치는결국사회의균형을무너뜨린다.기후위기,복지,경제,젠더갈등등복합적인문제를해결하기위해서는극단적주장보다현실과원칙을아우르는균형감각이필요하다.

환경과경제,성장과분배,자유와책임사이의조화를찾는것이야말로중용의정치이며,그속에서사회의지속가능한발전이가능하다.서로를존중하고이해하며,최선이아니라면차선이라도함께모색하는지혜가지금우리사회에절실하다.

이제대한민국은1인당국민소득4만달러시대에들어섰다.그러나경제적성취만으로는선진국이라할수없다.좌우의이념적대립을넘어,중용의정신으로사회적통합을이루어야한다.선대가물려준귀중한자원과정신을지켜내고,이를후대에온전히전하는것이현대적‘중용’의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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