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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 한학을 공부하던 때, 스승님 역시 ‘후당(厚堂)’이라는 아호를 지어주시며 “늘 후하게 베풀라”고 당부했다. 점쟁이와 스승의 말은 내 삶의 기준이 되었고 지금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필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말 그대로 ‘찐 흙수저’ 출신이다.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시로 올라와 검정고시로 중·고등 과정을 마치며 주경야독으로 소년공 시절을 버텼다. 서른 살 만학도로 대학 3학년 때 한문교육학원을 열었고, 1995년 서른여덟 살에는 오늘의 단체를 설립해 시민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문화답사·특강 등을 하고 있다. 전통문화지킴이로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한마디로 ‘오지랖’ 인생이었다. 그 점쟁이가 말했던 운명대로 살아가는 내 모습에 섬뜩함마저 느낀다. 생사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참 ‘용한 점쟁이’였다는 생각에 한 번쯤 다시 만나보고 싶다.
살다 보면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고, 큰 도움을 받아 성공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단체의 30년 역사를 돌아보면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건네준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오지호 선생, 김희태 위원, 김양균 변호사, 김대원 사장, 임지성 대표, 김윤태 차장 등이 손에 꼽을 수 있는 분이다. 인복이 내게 주어진 큰 행운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그 점쟁이는 어떻게 나의 ‘운명적인 미래’를 예견했을까? 운명이란 정말 사주와 관상에 정해져 있는 것일까? 흔히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운’을 운명이라 부르곤 한다. 사전은 운명을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적 힘 또는 이미 정해진 목숨과 처지’라고 정의한다.
김두규는 ‘명(命)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즉 금수저·흙수저와 같은 출발점이며, 운(運)은 때와 기회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교통상황이 운이고 자동차가 명이라는 비유처럼,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상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뜻이다.
재능과 노력을 다해도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속 사례를 보더라도 개인의 능력뿐 아니라 시운(時運)이 크게 작용한다. 조선왕조의 멸망과 대한민국의 건국, 항우가 유방에게 패한 일도 시운의 차이였다. 손흥민과 오타니가 세계적 선수가 되고,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성공한 것도 시대적 운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세계적 명화가 된 것도 도난 사건이라는 ‘우연’ 덕분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 역시 한국전쟁 피난 중 사라졌다가 50여년 만에 극적으로 다시 나타났기에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모두 운이 크게 작용한 사례다.
한국 사람들은 일이 잘되거나 잘 안 될 때 ‘내 팔자려니’ 하며 사주팔자 탓을 하곤 한다. 지금도 신문의 ‘오늘의 운세’ 란은 빠지지 않는 단골 코너다. 하지만 팔자소관이라며 스스로 단정해버리면 자유의지가 약해지고, 성장과 도약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만약 사람이 정해진 운명을 미리 알고 순응한다면, 애쓰고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인생이란 순응하면 등에 업혀 가고, 반항하면 질질 끌려간다”는 말을 곱씹어 볼 만하다.
옛사람들은 관상과 사주, 점술 등 운명론에 많이 의지했다. 특히 권력자나 기업의 리더는 큰 결정을 앞두고 점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주역’이 5000년 넘게 신탁서로 자리한 것도 운명에 기대는 인간의 본능을 보여준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사후 세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탓에 운명과 명리학에 더욱 기대게 된 면도 있다.
사람의 일생은 길고도 험한 여행이다. 추운 날도, 궂은날도 있다. 인생살이 역시 잘 풀리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 앞날이 불안하면 점을 치거나 마음 공부를 하기도 한다. 외롭고 불안한데도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경지는 성현의 길이며, 보통 사람에게는 쉽지 않다. 우리는 무속에 의존하다가 몰락한 사례들을 적지 않게 봐왔다.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 “주술로 흥한 자 주술로 망한다”고 했다.
‘맹자’에 “궁즉독선기신, 통즉겸선천하(窮則獨善其身 通則兼善天下)”라는 말이 있다. 시운이 없어 궁할 때는 홀로 수양에 힘쓰고, 시운이 열려 잘 풀릴 때는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라는 뜻이다. ‘주역’의 “독립불구 돈세무민(獨立不懼 遯世無悶)”이라는 구절 역시, 혼자 있을 때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에 나아가지 못하는 때에도 번민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요즘 시대는 어렵고 불안하지만 시운을 탓하며 멈출 수는 없다. 운은 결국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운(運)’이라는 글자에 ‘움직임’과 ‘흐름’이 들어 있는 이유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가 “운은 준비가 기회와 만날 때 생긴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일의 기회를 바라면, 오늘은 묵묵히 내 길을 걸어야 한다.
2025.12.03 (수) 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