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망을 통한 방대한 정보 수집과 원격 제어가 가능한 네트워크 기술은 우리의 삶을 놀랍도록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기술에 의해 보이지 않는 제약을 받기도 한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생명공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더 많은 가능성과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지만,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 기술은 과연 인간을 이롭게 하는가. 객관성을 바탕으로 인류 발전에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하는가. 혹은 통제되지 않을 경우 인류에게 치명적인 폐단을 남기지는 않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결국 윤리적 성찰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기술 발전의 이면은 역사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건설 공사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다이너마이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대량 살상의 무기로 활용됐다. 엔진의 발명은 물자와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반하는 트럭과 버스를 탄생시켰지만, 동시에 탱크와 장갑차를 만들어 전쟁의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양면성을 지닌다. 모든 기술적 진보는 필연적으로 대가를 동반한다.
고대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에서 인간의 위대한 능력과 동시에 그 위험성을 노래했다. “무시무시한 것이 많지만 인간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없다.” 그는 인간이 폭풍우를 가르며 바다를 항해하고, 영리함과 발명의 기술로 미래를 개척해 나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법과 정의를 저버릴 때 공동체를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여기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켜 왔지만, 기술의 성장이 자연과 괴리될수록 더 진보된 기술을 요구하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기술 집합체와 일상적으로 대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 대신 AI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조언을 구하고, 심지어 위로를 받는다. 법률 검토, 통계 분석, 회계 처리와 같은 전문 업무도 AI를 통해 수행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면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일부 직업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AI가 인간의 역할 일부를 대신하는 시대에 우리는 인간 중심의 윤리를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인간 관계의 본질은 단순한 문제 해결에 있지 않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책임을 나누며, 불완전함을 함께 견디는 데 있다. AI는 감정을 실제로 느끼지 못하면서도 공감의 언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된 결과일 뿐이다. 인간이 관계 속에서 느끼는 갈등과 불편을 회피하고 AI와의 관계를 선호하게 된다면,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인간적 성숙의 기회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 관계는 시간과 감정의 노력을 요구하지만, AI는 언제나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반응을 제공한다.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AI를 통해 일시적인 위로를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의 기본적 소통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AI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타인 대신 통제 가능한 존재와 소통하려 할 수 있다. 이는 공동체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AI 시대의 윤리는 거창한 규제 이전에 인간적 관계의 가치를 지키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AI에게 어디까지 맡기고, 무엇을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둘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기술 발전의 속도에 휩쓸리기보다, 인간의 역할과 사회의 구조를 성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핵심은 “기술의 발전보다 인간의 가치”를 우선에 두는 일이다. 편리함을 위해 기계와 공존하는 사회는 가능하지만, 기계에 삶의 중심을 내어주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인간다워져야 한다.
2026.02.24 (화) 2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