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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연말이 되면 “Happy New Year!”라는 인사를 주고받고, 때로는 “Are you happy?” “Am I happy?”라며 ‘행복’을 직접 묻는다. 인도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오늘 나는 매우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산다고 한다. 문화와 언어는 달라도, 인간이 바라는 것은 결국 ‘행복’ 하나가 아닐까 싶다.
새해를 맞으며, 어느덧 나는 고희(古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선뜻 확신에 찬 대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은 점점 분명해진다. 행복이란 더 많은 것을 가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삶에 대해 만족할 줄 아는 마음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람은 행복해지기에 충분한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더 많은 것을 갈망한다. 인도의 한 성자는 “삶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은, 내가 이미 행복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기억하는 것”이라 했다. 동양의 현인은 “인간의 생명은 유한한데 욕심은 무한하다. 유한한 생명으로 무한한 욕심을 부리는 것, 그것이 곧 불행이다.”라고 일깨웠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평생 모은 재산은 다 쓰지도 못하고, 떠날 때 가져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노예의 신분에서 사상가가 된 인물이다. 그는 “지금 당신이 누리는 것들은 세상이 잠시 허락한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이 곁에 있는 동안 감사히 여기라”고 했다. 또 이런 말도 남겼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아니라, 그 일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이다.”
행복과 불행은 결국 스스로가 선택한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상황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그리고 이렇게 말해볼 필요도 있다. “나는 행복하다.”
영어에 ‘해피(happy)’가 있다면, 우리에겐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로는 (행)幸, (복)福, (길)吉, (지)祉 등 여러 글자가 있지만, 유독 우리 민족이 좋아해 온 말은 ‘복(福)’과 ‘덕(德, 悳)’일 것이다. 사전은 복을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그로부터 얻는 행복”이라 정의한다. 그래서 우리는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즐겨 썼고, 집안에 복조리를 걸고, 복돈을 나누며, 사람 이름에도 ‘복’ 자를 즐겨 넣었다.
그렇다면 덕은 무엇인가. 덕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마음과 인격”이다. 큰 덕(悳)자는 ‘곧을 직(直)’과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곧은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고, 베풀 줄 아는 태도가 곧 덕이다. 그래서 우리는 “덕분이다”, “덕을 쌓아라”, “인덕이 있다”와 같은 말을 소중히 여겨왔다.
공자 사상의 핵심은 ‘덕’이다. 덕은 인간다움의 중심이며, 관계와 공동체를 지탱하는 뿌리다. 공자는 “군자는 덕을 숭상하고, 소인은 이익을 좇는다”고 했다. 이 말은 오늘의 정치·경제·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경구다.
IT와 AI, 글로벌 시대라 해도 인간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술이 아니라 사람, 경쟁이 아니라 관계, 속도가 아니라 신뢰가 결국 모든 것을 좌우한다. 리더십 또한 마찬가지다. 경영 전략이나 기술적 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품는 힘, 곧 덕에서 비롯된다.
고대 그리스는 정의·지혜·용기·절제를 네 가지 기본 덕목으로 삼았다. 시대와 문명이 달라도, 인간이 지켜야 할 가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덕이다.
예부터 “덕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고 했다. 적덕지가 필유여경(積德之家 必有餘慶)이다. 개인은 물론 가정과 기업, 단체와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고, 수성보다 경장이 어렵다는 말이 있다. 특히 세대를 거치며 이어지는 조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의 축적이 있을 때 비로소 오래간다.
복을 바라면서 복을 짓지 않으면, 복은 오지 않는다. 공자는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고 했다. 덕은 반드시 사람을 불러온다.
복 또한 마찬가지다. 복을 짓고, 복을 나누는 사람에게 복은 자연스레 돌아온다.
법륜 스님은 “복을 짓되, 복 받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다. 복은 계산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농사짓듯, 밥을 짓듯,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내는 삶 속에서 복은 저절로 지어진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인사를 건네고 싶다. “복 많이 받으세요” 대신,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그 인사가 곧 행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새해,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행복한가. 그리고 오늘도, 나는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2026.01.27 (화) 2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