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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
칭찬과 감탄, 감동은 세상을 살맛나게 만든다. 도전을 끌어올리고, 없던 용기도 샘솟게 하니까 연습하면 좋고, 몸에 배면 존경도 받는다. 그런데 요즘은 더 잘난 사람에게만 칭찬받기를 원한다. 노래 잘하면 유명한 가수에게만 칭찬 받으려 한다. 경연을 일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에 그런가? 정치에서도 당 대표나 대통령에게만 칭찬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공천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어린이들도 똑똑해져서(?) 어르신들의 칭찬은 뻔하게 듣고, 하찮게 여긴다. 이웃의 칭찬은 귀찮아하기도 한다. 자칫 머리라도 쓰다듬으며 칭찬했다가는 아동 성추행으로 몰릴 수 있다.
칭찬하기 거북한 칭찬문맹시대다. 감탄 잘못했다가는 가난한 경험쟁이로 취급받는 감탄문맹시대, 함부로 감동했다가 아무데서나 질질 짜는 지질컹이가 되는 감동문맹시대다. 지질컹이는 찌질이의 우리말이다.
고마움은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더 도와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세상을 좀 살 줄 아는 사람들은, 고마움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이른다. 작은 일이라도 고마워해야 하고, 고맙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 일이다.
그런데 고마움을 잊고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많다. 오래 근무하면 별 일 안 해도 승진하는 줄 아는 사람 있다. 군대도 아닌데.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려도 치워주는 줄 아는 사람도 있다, 분리수거하지 않으면서.
인터넷에서 도움 받았으나 고마워할 곳이 없다. 머리 도움 받으면 ‘저작권 침해’로 몰릴 수 있고, 손 도움 받으면 ‘공로 가로채기’가 될 수 있고, 글 도움 받으면 ‘표절’이 될 수도 있다. 고마워해야 하는데 참으로 난감한 감사문맹시대다.
키오스크 앞에서 키 작은 어린이는 주문을 못하고, 어르신들은 주문 방법을 모른다. 키오스크란 말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카드 없으면 물건을 살 수 없고, 버스도 탈 수 없다. 소비의지 박탈이고, 이동자유권 박탈이다. 살고는 있으나 디지털을 모르면 어리벙벙해지는 디지털문맹시대가 된 것이다.
남들이 못 알아먹게 떠드는 사람 꽤 많다. 유혹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학자는 학술용어로, 약자권익을 앞세운다는 법조인은 법률용어로, 생명존중을 앞장세우는 의사는 의료용어로 말한다. 알권리를 외치는 기자조차도 전문용어를 쓴다.
꼭 그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집을 짓는 사람도, 옷을 짓는 사람도, 밥(요리)을 짓는 사람도, 자기 분야를 거창하게(?) 만들려고 전문용어를 만들어 쓴다. 남들이 못 알아먹게 울타리를 쳐야, 빛나 보이고 돈이 되니까 그러겠지.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은 왕따 당하고 문맹이 된다. 전문용어를 몰라도, 먹고 자고 싸고 돈 벌 수 있는 시대가 지나고, 다시 문맹시대가 찾아왔다. 이제는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한다. 아무리 역사가 돌고 도는 것이라 하지만, 다시 문맹시대가 올지는 몰랐다.
말귀 못 알아들으면 답답하다. 말귀는 상식의 우리말쯤이니, 말귀 막혔으면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글눈 어두우면 갑갑하다. 글눈은 이해력의 우리말쯤이니, 글눈 깨치지 못했으면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말은 어린이도 알아듣기 쉽게 해야 하고, 글은 아이들도 알아먹게 쓰라고 한다. 이때 나이 기준은 중학교 2학년이 알맞다, 15살. 세종대왕은 ‘어린 백성이’ 제 뜻을 펴라고 한글을 만들었다. ‘어린’을 ‘어리석은’이라 배웠지만, 정말로 ‘어린’ 사람을 말했는지도 모른다.
칭찬과 감탄을 잊어버리고, 감동과 고마움을 표현 못 하고, 디지털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시대여서 혼자서 찾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러다간 서로 돕고 남에게 기대며 산다는 ‘사회적 동물’이란 말도 틀린 말이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알려주고 배워야 한다. 계몽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계엄으로 계몽할 일은 아니지만!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한 사람 살아내려면 온 나라가 나서야 할 때’가 됐다.
2026.02.11 (수) 19: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