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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식민지역사박물관 명예관장인 심정섭씨가 23일 전남군사후원연맹 회장 감사장, 충북군사후원연맹 회장 감사장, 은사재단 군인원호회 전남지부장 감사장 등 모두 3점을 공개했다. 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식민지역사박물관 명예관장인 심정섭 사백(83·광주 북구)은 23일 전남군사후원연맹 회장 감사장, 충북군사후원연맹 회장 감사장, 은사재단 군인원호회 전남지부장 감사장 등 모두 3점을 공개했다.
공개된 감사장의 크기는 각각 가로 27㎝·세로 19㎝, 가로 30㎝·세로 23.9㎝, 가로 26㎝·세로 19㎝다.
일제는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 조선인들을 ‘최후결전’에 동원하기 위해 경방단과 자위단, 군사후원연맹, 군인원호회 조선지부 등 각종 후방 지원조직을 조직적으로 편성했다. 이번에 공개된 감사장은 당시 전쟁 수행을 위해 조선인을 조직적으로 동원했던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다.
실제로 1938년 1월 10일 전남군사후원연맹 회장이자 도지사였던 일본인 신패조는 고흥에 거주하던 김동선이 비행기 헌납비 10원을 납부하자 감사의 뜻을 담아 감사장을 수여했다. 당시 10원은 현재 가치로 약 1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 충청북도 군사후원연맹 회장이자 충북지사였던 김동훈(1886~1947)은 충북에 거주하던 최태하가 국방헌금을 기부하자 감사장을 전달했다.
또 1943년 10월 22일에는 고흥에 거주하던 김전동선(김동선 창씨개명)이 군인원호사업 자금을 헌납하자 은사재단 군인원호회 전남지부장이자 전남지사였던 일본인 병두준 명의의 감사장이 수여됐다.
감사장을 받은 기부자들에게는 각종 특혜도 뒤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학비 감면과 노역 면제는 물론 일본 유학 편의 제공, 자녀들의 경성제국대학 입학 우대, 일본 유학 시 도항증 발급 편의 등 사회·행정적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기부는 사실상 강제됐다. 1년에 한 차례 이상 일정 금액을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했으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경찰서에 출석해 경고와 질책을 받고 납부를 약속하는 각서를 작성해야 훈방됐다. 2년 이상 미납하면 단체에서 영구 제명됐고, 3회 이상 불이행할 경우 홋카이도 탄광 등으로 보내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특히 은사재단 군인원호회 조선지부는 1938년 12월 설립돼 1945년 8월 광복 때까지 존속한 대표적인 군인원호단체다.
일본에서는 같은 해 10월 3일 일본 천황이 군인원호에 관한 칙어를 발표한 뒤 일본 후생성이 육군성·해군성과 협력해 은사금 300만원을 출연, 은사재단 군인원호회를 설립했다. 이후 1938년 12월 1일 조선지부가 설치됐고, 1941년 7월 31일에는 조선군사후원연맹을 흡수·통합하며 조직을 확대했다.
조선지부의 설립 목적은 황군(일본군)의 사기를 진작하고 후방의 결의를 북돋우는 것이었다. 서울(경성)을 비롯해 전국 13개 시·도에 지부를 설치해 조직망을 구축했다.
회원도 기부액에 따라 세분화해 관리했다.
1만원 이상 기부자는 ‘유공회원’, 1000원 이상은 ‘특별회원’, 100원 이상은 ‘통상회원’, 그 외는 ‘찬조회원’으로 구분하는 등 치밀한 회원 관리 체계를 운영했다. 심 명예관장은 각종 단체에 꾸준히 기부한 기록 등을 볼 때 김전동선은 특별회원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군인원호회의 주요 사업은 군인과 가족의 생업 지원, 의료 보호, 육영사업 등이었지만 실제 활동은 전쟁 수행을 위한 후방 지원과 전시 동원에 집중됐다.
1942년 1월에는 전선 장병에게 보낼 붕대와 위문편지, 과자 등이 담긴 위문대를 각 도별 할당량에 맞춰 전국에서 43개 모집하도록 했으며, 1943년 10월에는 천황의 칙어 봉독과 정오 묵념, 학교와 청소년 근로동원, 종교인 농촌 동원, 출정 군인과 유가족 위문 행사 등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친일 유지들이 각종 행사에 앞장섰고, 뒤에서는 일본 경찰이 총칼로 감시하며 참여를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정섭 명예관장은 “일제는 군인원호회를 통해 관공서와 회사 등에 군인원호 칙어 봉독식을 강요하고, 일반 민중에게는 정오 묵념과 신사참배, 창씨개명 등을 강제하면서 황민화와 민족말살 정책을 추진했다”며 “이번에 공개된 감사장은 일제가 전쟁 수행을 위해 조선인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통제했던 실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라고 말했다.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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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4 (월) 1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