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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익 광주미술관장 |
우리는 몸의 통증에는 지극히 민감하다. 열이 나면 즉시 감기약을 찾고, 작은 통증만 느껴져도 병원으로 달려간다. 해마다 정기 종합검진을 받으며 세밀한 이상 유무를 살피는 데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는 얼마나 성실하게 응답하고 있는가. 아침에 눈을 뜨기조차 힘겨운 번아웃 증후군,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 막히는 불안장애, 밤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 이러한 증상들은 단지 ‘개인의 의지가 약해서’ 발생하거나 ‘남들도 다 참고 사니까 지나갈 일’이 아니다. 몸이 한계에 달해 기침을 하듯, 마음에 과부하가 걸렸으니 잠시 멈추어 달라고 내지르는 비명이자 자연스러운 경고 신호다. 이를 방치하면 신체 면역력 저하와 심혈관 질환 등 육체적 병증으로 전이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와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붕괴되어 가는 현대인의 정신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바로 ‘문화예술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에서 “예술은 단순히 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결핍을 보완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종의 처방전”이라고 말했다. 미술관과 공연장은 현대인의 영혼을 치료하는 ‘영혼의 병원’인 셈이다. 바흐의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콘서트홀에 앉아 있거나, 조용한 미술관에서 아름다운 작품 앞에 서 본 경험은 현실의 소음과 업무적 압박을 아득한 저편으로 물러나게 한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여가 활용이 아니다. 과도한 자극으로 가득 찬 일상에서 벗어나 내면의 여백을 확보하는 적극적인 ‘정신적 환기’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 주는 엄숙한 위로를 느끼고, 소설 속 인물의 아픔에 눈물 흘리는 공감의 경험은 가슴속에 억눌려 있던 앙금을 씻어내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오늘날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는 개별적 관리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행복지수와 직결되어 있다. 한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지만, 유엔(UN) 산하 자문기구가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 등에서 집계되는 국민 체감 행복지수는 OECD 주요국 중 늘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외형적인 성장에 비해 개인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턱없이 낮다는 뜻이다. 그 주요 원인은 행복의 기준을 타인의 시선이나 외부적 조건, 즉 ‘남들만큼 가져야 한다’는 물질적 소유와 비교에 두기 때문이다. 결국 내면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삶을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 전환(Mindset Shift)’이 필수적이다. 조건이 갖춰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삶의 소소한 순간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긍정적인 신호에 집중하려는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란 현실의 어려움을 모른척하는 대책 없는 낙관론이 아니다. 비가 오는 날 축축하게 젖은 바닥을 불평하기보다, 빗방울이 창문에 그려내는 투명한 수채화를 감상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뜻한다. 예술을 즐기는 시선이 바로 이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경쟁 속에서 숨 가쁘게 내달리고 있는 나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내 마음은 지금 안녕한가.” 주말 아침, 스마트폰을 잠시 꺼두고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 작품이 건네는 조용한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도서관의 차분한 공기 속에서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스스로의 내면을 다정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고 긍정의 시선으로 나의 하루를 보듬는 작은 노력, 이러한 문화적 자극이야말로 수많은 압박과 소음 속에서 나를 지키고 참된 삶의 가치와 행복을 되찾는 가장 지혜롭고 멋진 길이다.
윤익 gn@gwangnam.co.kr
윤익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8.24 (월) 09: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