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시론]촛불혁명과 장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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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시론]촛불혁명과 장미대선

배호남 초당대 교수·문학박사

오늘은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다. 이번 19대 대선은 여느 지난 대선과는 달리 5월에 치러지게 되었다. 그래서 장미대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장미대선을 가능하게 한 힘은 작년 11월부터 4개월 가까이 주말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연인원 1300만명이 넘게 참여한 촛불집회였다.

부패하고 무능한 지도자를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이 촛불집회는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언론과 공권력의 비호 아래 국민의 뜻을 거스르던 박 전 대통령은 촛불혁명을 통해 국회에서 탄핵됐고, 탄핵안이 헌법재판관들의 전원 일치 판결로 인용됨으로써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더 놀라운 점은 4개월에 걸친 집회에서 단 한 건의 폭력이나 불법행위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시민들은 직접 민주주의의 해방구를 열고 그 안에서 질서정연했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 정신을 이렇게 완벽히 구현한 사례는 이전에 없었다. 그뿐인가. 한국의 시민들은 책임감 있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100만명이 넘게 모인 광화문 광장에, 그 다음날 새벽이면 쓰레기 하나 없었다.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이 어느 수준에까지 높아졌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촛불혁명은 정치적이면서 문화적이었고, 문화적이면서 또한 정치적이었다. 시민들은 마치 프랑스의 68혁명처럼 축제를 즐기듯 혁명을 즐기면서도, 자신들이 원하던 정치적 변화를 마침내 이끌어냈다. 촛불혁명은 영국의 마그나카르타와 프랑스의 68혁명을 합친 것만큼이나 큰 역사적 성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 이후다. 모든 혁명에는 끝이 있다. 독일의 유대인 사회학자 벤야민의 말처럼 “혁명은 우연적이고 비일상적인 축제의 광기”이다. 매일의 일상이 직접 민주주의의 혁명일 수는 없다. 촛불혁명이 이뤄놓은 결과를 대의 민주주의의 체제 안에서 일상의 변화로 승화시키는 것, 그것이 오늘 치러지는 장미대선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근현대사는 촛불혁명 이전에 두 번의 혁명을 경험했다. 1960년의 4·19 혁명과 1987년의 6월혁명이 그 둘이다. 그러나 4·19혁명의 결과물인 장면 정부는 피 흘리며 혁명을 일궈낸 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했다. 부패하고 무능력한 혁명정부는 결국 다음해인 1961년 5·16 군사정변을 통해 무너졌고, 길고 긴 박정희 군사독재가 시작됐다.

1987년 6월 항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군부 독재를 무너뜨리고 대통령 직접 선거의 결과를 가져오는 듯하더니, 결국은 지역주의에 매몰된 3김의 분열로 노태우 전 태통령이 집권하며 신군부 독재를 연장시켜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선거의 결과가 중요하다. 이제 내일 새벽이면 앞으로 5년간(대통령 임기에 대한 개헌이 이뤄질지는 일단 논외로 하자) 우리 사회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한다.

지난 두 번의 혁명처럼 변혁에 대한 열망과 노력이 배신당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 짧았던 이번 대선 기간에도 지역주의, 흑색선전, 색깔론에 따른 이념공세, 안보를 빌미로 한 전쟁 공포 분위기 조성 등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던 고질적인 병폐가 재현됐다.

그러나 나는 촛불혁명을 통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우리 헌정사상 첫 역사적 발걸음을 내딛은 시민들의 성숙함을 믿는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걸맞은 정부를 갖는다”라고 썼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우리들의 민주주의적 수준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수준에 걸맞은 정부를 갖는 일이다. 내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부가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민주주의적 정부로 새롭게 시작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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