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훼손의 손길로부터 수 백 년, 수 천 년을 인고(忍苦)해온 문화재가 지닌 강인한 힘은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 속에 숨겨진 가슴 뭉클한 이야기, 문화재가 겪어야 했던 아픈 사연을 알고 나면 문화재를 다시 보게 된다. 설령 깨지고 찢어져 못나 보이는 문화재라 할지라도 더욱 사랑스럽고 고마울 따름이다.
국보나 보물처럼 최고의 대접을 받는 귀한 몸보다는 오히려 거칠고 투박하여 어수룩한 모습으로 옹벽한 곳에 자리한 문화재가 훨씬 정겨웁다. 하물며 그 속의 숨겨진 이야기로 얻은 교훈과 감동이야말로 번지레한 미사여구의 필설에 비하겠는가.
문화재는 예와 오늘을 잇는 전통과 현재의 가교(架橋)이다. 그러고 보면 사찰로 들어가는 다리도 이곳과 저곳 피아간(彼我間)을 이어주고,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케 하는 과정이자 통로이다.
천년 고찰 선암사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승선교(昇仙橋)의 아름다움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승선교는 조선 숙종 때 호암대사가 조성했다. 현존하는 다리 중 가장 우아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무지개다리 승선교와 그 아래로 멀리 눈에 들어오는 강선루(降仙樓)는 환상의 짝을 이룬다. 승선교에서 눈여겨 볼 것은 용머리다. 용머리는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불가에서 용은 호법신이다. 다리를 오가는 사람 중에 사악한 자를 물리쳐 사찰을 수호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수비에 의하면 호암대사가 시주를 받아 승선교 축조 불사를 했고, 불사를 마치고 동전 한 닢이 남자,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청빈한 마음에서 용의 입에 물려둔 것이라고 한다.
송광사에서 가장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우화각과 능허교. 반달 아치 가운데는 용머리가 흘러가는 물을 향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예전에 이 용머리에는 동전 세 닢이 철사에 꿰어 걸려 있었다. 능허교를 처음 세울 때 시주를 받아 불사를 마치고 남은 동전을 매달아 둔 것이다. 이 또한 몫이 정해진 재물은 그 몫으로만 써야 한다는 철저한 옛 스님들의 청빈(淸貧)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화도 전등사를 답사 해보면 웃음을 금치 못할 구조물을 볼 수 있다. 다포집의 우아함을 드러내는 대웅전 추녀 밑에 나체의 여인상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성한 부처님이 계시는 대웅전 건물에 발가벗은 여인의 상을 조각해 걸어두었다니 무언가 사연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내용인즉, 광해군 6년 전등사는 화재로 전소되어 새로 짓게 되었는데 이때 공사를 맡은 도편수가 아랫마을 주모와 정분이 났다. 주모에게 푹 빠진 도편수는 벌어들인 돈을 주모에게 몽땅 맡겨두었는데, 어느 날 주모가 돈을 챙겨들고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주모의 배신에 화가 난 도편수는 앙갚음을 할 묘안을 찾다가 그 여인을 닮은 네 개의 나체상을 조각하여 대웅전 사각 모서리에서 추녀를 떠받치게 했다. 부처의 설법을 듣고 개과천선하라는 뜻이었고, 자기처럼 사랑에 눈이 먼 자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경고인 셈이다.
요즘 세상, 공적 일을 핑계해서 사리(私利)를 챙기려는 빙공영사(憑公營私)가 허다하다. 이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덕목으로 삼은 염치(廉恥)를 모르는 파렴치한이랄 수 있겠다.
전국 곳곳을 누비며 찾아가는 역사의 현장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건네는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만난다. 계곡 위를 머리띠처럼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홍예(虹霓), 홍예교 아래 조각된 익살스런 용머리, 법당 추녀 밑에 다소곳한 여인상들까지. 오랜 세월을 숨 쉬어 온 이들은 얼마나 내 놓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는가. 가슴으로 나누는 이들과의 대화, 진정 나를 흥분케 하는 일이다.
2026.03.14 (토) 00: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