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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이사 |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온 세계의 화제는 알파고 뉴스였다. 한국의 간판 기사(棋士)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對局)에 대한 기사였다. 총 5국으로 치러진 세기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4승 1패로 완승을 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천재 기사를 이긴 것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의 절대 성역을 무너뜨렸다고 여겨지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야말로 사람들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사전에 의하면 ‘인공지능(人工知能) 곧 AI(Artificial Intelligence)는 인간의 학습 능력, 추론 능력, 지각 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시키는 컴퓨터 과학의 한 분야다”고 돼 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갖고 있는 자연 지능과는 다른 개념이다. 인공지능을 통해 컴퓨터나 로봇이 인간처럼 지능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알파고(AlphaGo)’는 구글이 인공지능에 의해 개발한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다. ‘알파고’라는 이름은 그리스 문자의 첫 번째 글자로 최고를 의미하는 알파(α)와 기(棋:바둑)의 일본어 발음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 고(Go)를 뜻한다.
인공지능의 진화는 바로 ‘챗 GPT’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세상은 다시 한번 요동치면서 우리에게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있다. 현재 쇼핑, 금융, 의료, 법률 상담을 비롯한 고객센터 업무나 개인 비서 역할 등 일상생활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선 인간처럼 사고하고 학습하도록 훈련된 AI가 인간의 상상 이상으로 통제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AI 대부’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은 지난해 구글을 떠나면서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킬러로봇이 현실이 되는 날이 두렵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건강한 미래를 위해 기술과 인간의 관계성을 어떻게 정립 해나갈 것인가.
‘도덕경’과 ‘논어’를 통해 노자나 공자를 만나는 사람들, 러셀이나 칸트의 철학서로 토론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위엔 여전히 많다. 이렇듯 세상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인문학과 인공지능이 병립하고 연동하면서 발전해 왔다.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 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내 중심으로 이끌어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아예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짐짓 외면의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매한가지라는 생각이다. 두려움의 실체는 바로 인간 고유의 자연 지능 영역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 일게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인간이 만들어 낸 기계일 뿐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상상과 창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고. 이러한 상상력과 창의성은 인문적 토양에서만 가능한 작업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DNA에는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플의 기술은 인문학과 결합해 우리의 심장이 노래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 애플은 언제나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인문학을 하는 이유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인문적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러한 인문적 통찰력은 질문을 하는 데서 생겨나며 통찰력이 있어야 비로소 창의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물론 훈고(訓故)의 기운이 너무 강하면 창의가 발휘되지 못한다는 점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예전 미국의 한 언론사가 조사한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미국의 1000대 기업 CEO 가운데 경영학 관련 전공을 한 사람은 1/3에 지나지 않고, 모두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는 기사였다. 인문학자들은 변화의 흐름에 부합하는 정확한 의사결정, 빠른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였던 연암 박지원이 ‘옛것을 본받더라도 변화를 알아야 하며, 새것을 창조하더라도 옛것에 능해야 한다’라고 했다. 곧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공자의 ‘온고지신(溫故知新)’도 같은 맥락이다. 온고지신과 법고창신이 주는 교훈은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하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미래의 세계가 과거와 현재보다는 중요하다지만 옛것이 없는 새것이란 있을 수 없다.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라는 정신과 상상력, 통찰력, 창의력 같은 인문학의 힘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은 세상의 흐름을 읽게 만드는 학문이다.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 흐름을 읽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