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고의 그날부터 10년이 지났는데도 잊을 수 없는 건 사고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사고 원인이 무엇이었든 초기대응만 잘했다면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선실 내에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때문에 수많은 무고한 목숨을 잃었다. 사고 초기에 전원 구조했다는 속보가 나와 안심했지만 이후 이것이 오보임과 동시에 구조자와 사망자 인원이 계속해서 변동되어 이들의 생존을 바라는 가족들의 심장을 찢어지게 했다.
그뿐인가. 특별한 대책도 없이 무작정 재난 지역(안산과 진도)에 찾아와 기념사진을 찍고 가는 일부 정치인들 때문에 유가족들의 상처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참혹한 사건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슈로 이용하려는 파렴치한 짓을 벌인 것이다. 그 이후에는 어땠나. 유족들을 향해 ‘지겹다’, ‘이제 그만하자’고 폭언을 쏟아내거나 정치적 목적이 있다, 배후 세력이 있다는 등 말도 안되는 음모론을 꺼내는 이들도 있었다. 다행히 얼마 전에는 자신의 유세 현장에서 유가족들에게 ‘시체팔이를 한다’며 모욕적인 언사를 한 차명진 前 국회의원이 항소심에서도 유가족에게 보상해야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유가족들에게는 11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고통이 현재진행형이다. 국가에서 보상 범위를 정하고 진행하려고 하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보상보다 정확한 원인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원인 규명을 커녕 그들을 잊어가는 이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또다시 179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가족, 지인들과 태국으로 여행을 다녀오던 이들의 생명이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제주항공 참사다. 이 사고로 인해 탑승객 181명 중 단 두 명만이 살아남았다. 더욱이 연말을 맞아 대부분 가족 단위로 떠난 여행객들이었기에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조류 충돌로 엔진에 문제가 생긴 것이 사고의 시작이지만 비상착륙을 시도한 항공기가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하면서 대형사고가 됐다. 문제는 처음 비상착륙을 시도할 때 조종사는 예정된 활주로인 1번으로 착륙하겠다고 했으나 관제탑에서는 다른 방향인 19번 활주로로 유도한 것이다. 조종사와 관제탑이 여러 차례 교신한 끝에 동체착륙을 했지만 결국 19번 활주로 끝에 있던 대형 콘크리트와 충돌하고 말았다.
이 와중에도 유가족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이 나타났다. 유가족을 대표해 앞에 나선 이가 실제는 가족이 아니라거나 이번 사고가 무속과 관련이 있다, 여객기 사고 영상을 어떻게 찍었냐는 등 음모론이 고개를 들었다. 심지어 무안공항이 허가가 나서는 안됐다거나 ‘전남이 전남했다’는 등 지역 비하 발언이 각종 인터넷상에 쏟아졌다.
아무리 공감 능력이 결여됐더라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할 텐데. 얼마나 이기적이면 타인의 고통을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말 많은 이들이 무안공항을 찾았다. 유가족들을 위해 대기 장소가 마련되고 전국 각지에서 구호품을 보내왔다. 매일 개인이며 단체 할 것 같이 찾아가 유가족들에게 음식을 전달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살폈다. 절망과 고통에 빠져본 자만이 그 힘겨움을 진정 이해한다고 했던가. 함께한 수많은 이들 속에는 세월호 유가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원봉사를 하며, 제주항공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했다.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그 고통을 표현할 방법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장에 함께하진 못했지만, 많은 이들이 단 한 명의 생존 소식이라도 들려오길 바라며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노란 리본으로 오랜 기간 추모에 동참하기도 했던 것처럼 제주항공 사건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며 추모할 것이다.
이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시간이 지났다고, 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척해서도, 잊어서도 안 된다. 유가족들을 향해 이제 그만하라는 말도 해서는 안 된다. 가볍게 내뱉은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칼처럼 예리하게 박혀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낼 수도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함께해야 유가족들이 정확한 사건 규명과 적절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슬픔을 당한 이들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를 우리가 함부로 막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