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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복 영화감독 |
다들 애써 아니라고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빛의 도시 광주는 어둠의 도시 묵주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그 많은 희생과 아픔을 내주고서도 되어주고서도 유형의 변방이 되어버린 이유를 내 머리로는 도저히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죽음을 위로가 아닌 흥정으로 여기는 정치와 사회는 문명국가에서 백주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집단의 짜고 치는 이권 카르텔이다. 국가폭력을 묵인해 왔다는 국민적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 긴 세월을 지나면서 국가는 폭력과 불의 앞에 등 돌리게 만드는 학습효과 원인을 제공한 것과 다름없다.
5월 광주항쟁이 헌법 전문 수록이라는 달콤한 쥐약이 묻은 덫이 우리 앞에 또다시 놓였다. 마치 광주항쟁 치료에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이 총에 설맞은 멧돼지처럼 날뛰며 22대 국회도 코미디 극장으로 될 가능성이 클 거 같다.
양당을 비롯한 군소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물을 만난 듯이 헌법 전문 수록을 놓고 자글자글 끓는다. 헌법에 별 관심 없이 살아온 나에게는 다소 생소했다. 그래서 헌법 전문을 찾아보았다.
헌법 전문은 띄어쓰기 공백 포함 431자(공백 제외 341자)로 구성하고 있다.
헌법의 본문 앞에 있는 서문으로서 헌법의 성립 유래, 헌법제정권자, 헌법의 제정 목적, 헌법의 기본원리 등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전문의 법적 효력은 법령 해석의 기준이 되며 재판의 직접적인 기준이 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견해라 한다.
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헌법은 모두 9차례 개정되었고 87년 10월 29일 9차 개헌 이후 아직껏 헌법 개정 없이 37년째 제6공화국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세계 질서가 변하고 사람이 생각이 바뀌었는데 아직까지 37년 전의 틀에 갇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내 자신이 끔찍했다. 내 삶에 맞는 제7공화국 시대에 살고 싶다.
헌법 전문인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다음에 ‘5·18광주민주화운동’만 보충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국민적 합의’, ‘법리적 해석’, ‘천문학적인 국민 투표 비용’ 운운하는 궁색한 변명을 한다. 전국적으로 치러질 보궐선거도 있고 각 진영이 진심을 다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없는 법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들이 유독 많이 포진된 22대 국회 아니던가.
5·18민주화운동 전신 ‘원 포인트’ 헌법 전문 수록은 오래 전부터 거론되었다. 굳이 ‘원 포인트’라는 말을 쓰는 이유가 아마도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온갖 곁가지 개헌적 요소들을 제상에 올리며 물 타기를 경계해 나온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5월 영령들은 다시 또 세상 밖으로 소환되면서 죽음을 흥정하는 정쟁의 더러운 굿판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고양이 목에 방을 달기에 합의해 놓고 방울을 한 개 달 것인지 두 개, 세 개 달 것이지 갖은 술수와 기만으로 수렁에 빠지면서 허송세월 보낼 게 눈에 보인다. 그들만의 문법으로 광주시민과 국민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헌법 전문 수록은 본질은 흐려질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5·18광주항쟁을 헌법전문에 수록하는 일이 최우선인 것은 맞다. 더불어 검찰 권한 축소 내지는 제한 같은 개헌적인 요소를 수정 첨가한다면 좋겠지만 각 정당과 의원들의 이해가 달라 지지부진 변죽만 울릴 게 분명해 보인다.
5월 광주항쟁 원형질이 지닌 민주주의 정신과 가치는 사라지고 들쥐 떼들의 정치 게임 속에 감춰진 간사한 음모와 술책을 다시 또 보게 될까 두렵다.
특히 광주에 지역구를 둔 22대 국회의원들은 21대 전임 국회의원들의 말로를 보았을 것이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만도 못한 한편의 지리멸렬한 처참한 단편영화를 목도했다면 이번 헌법 전문 수록에 임하는 자세는 사뭇 달라져야 할 것이다. 자칫 개인의 정치 몰락 뿐 아니라 민주당이 타이타닉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실천적 행동을 보여준 정당에 자리를 내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치열한 대안과 투쟁과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당 대표에게 충성하라고 뽑은 선수가 아닌 5월 영령과 시민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사에는 모 22대 국회에서는 광주항쟁 정신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는 불가역적(不可逆的) 대못을 박아야 한다.
내년 5월에는 장미와 라일락 향기의 기억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