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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서 시인 |
하지만 그는 어린 고등학생들의 귀가를 설득하였다. “고등학생들은 나가라. 우리가 싸울 테니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후에 투쟁에 같이 나섰던 동지들의 삶도 챙긴다. “병관아, 그리고 명관아. 너희들은 지금 이곳을 빠져나가라. 오늘로 광주도 끝이다. 그리고 너희들 목숨도…, 너희는 제발 집으로 돌아가거라.”
윤상원 평전에 의하면 ‘어쩜 이 순간이 그 애들과의 마지막 해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서로의 살이라도 뜯어 나누고 싶은 안타까움으로’ 권하는 그 마음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기에 가능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그가 죽음을 통감한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기 죽음으로 불의를 증언하고 역사적으로 남겨서 기억 투쟁의 밑바탕이 되겠다는 것일 터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다시 반세기도 지나기 이전에 이겼다. 앞으로도 그는 여전히 이길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12.3 비상계엄 쿠데타는 달랐다. “나라가 위급하니까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관악구에서 배달하다 왔고 너무 황당하고 분노가 인다”라며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것이고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아니 소수여당이 됐으면 협치할 생각을 해야지, 그것도 국민의 뜻인데 국민을 때려잡겠다는 게 말이 되나?” 한 언론에 소개된 일반 시민 윤주민(59세) 씨의 이야기이다. 비상계엄 쿠데타가 발령된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으로부터 겨우 두 시간도 지나지 않은 12월 4일 오전 0시 15분경에 국회 앞에 시민 약 200∼300명이 모여 ‘계엄 철폐’를 외치는 등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한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계엄의 실행체였던 일부 군인과 경찰들의 반발은 거의 저항에 가까웠다. 특히, 계엄군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특수전사령관 등은 윤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며 무력 사용이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지연 내지 지체시켰으며, 현장 지휘관들 역시 계엄령이 헌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았으므로 명령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정황이 여러 군데서 보인다. 그리하여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 요지문에 명확히 드러난 것처럼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처럼 지난 5·18과 이번 12·3의 상황에 대하여 비교해보며 여러 가지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윤상원 열사의 눈으로 보면 이는 간단명료해진다. 민주주의 또는 민주공화정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번 12.3 비상계엄 쿠데타에 대한 헌재의 판결문 이후에 앞으로는 군사쿠데타가 거의 없으리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물론, 단순한 헌재 판결문 때문이 아니라 12.3 군사쿠데타를 막아섰던 국민들의 적극적인 대응 태도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기원이 되었던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민주공화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무너졌는지를 잘 안다.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는 정치 체제를 기반으로 했던 아테네의 민주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과 부유층의 권력 독점이 심화되며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였고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지금, 친위쿠데타의 구성원이었던 엘리트 권력층이 본색을 드러내며 총궐기하는 듯한 우리의 상황이 언뜻 겹친다. 아직도 쿠데타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또한 프랑스혁명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의 시원이 되었던 프랑스가 곧이어 나폴레옹 독재를 불러온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우리의 4·19 이후에 5.16 군사독재가 찾아온 연유이기도 하다.
힘 있는 자들의 수월한 권력 취득 수단인 불법 쿠데타를 비롯한 반헌법적 행위들을 막아내는 시민들 개개인의 힘이 곧 민주주의의 최대 보루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아마 이번 12·3 비상계엄 쿠데타를 보면서 윤상원 열사가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긍께라, 민주주의는 결코 스스로 지켜지지 않어라, 각각의 책임감이 모일 때만이 살아남는 것이랑께라!” 그리하여 서로 함께 확인한다. 민주주의는 제도나 윤리 이전에 시민들 개개인의 지속된 참여를 통해 계속 새롭게 바로 세우는 사회적 주체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시 간구하노니, 윤상원 열사가 계속 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