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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석 전남대학교 사학과 강사 |
1980년대 광주에서 학교에 다녔던 세대, 5월이 오면 슬펐다. 세월이 지나도 가슴 미어지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5월의 노래다. 80년 5월 21일 새벽 광주는 외부와 통신이 완전히 차단됐다. 대형 헬기는 하늘을 날고, 공수부대는 시민들을 향해 총을 쐈다. 여기저기 쓰러진 시민들, 슬픈 계절이었다. 5월 광주 시내 적십자병원은 헌혈 물결로 이어졌다. 연대와 나눔은 5월 정신이 됐고 광주의 자산이다. 5월은 강했다.
시민은 경찰서와 예비군 탄약고에서 무기를 꺼내 무장했다. 시민군이다. 같은 달 27일 새벽 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점령되면서 광주의 시민군 일주일 해방일지는 끝났다. 그날 오전 3시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하자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여성의 시내 길거리 방송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 계엄군이 여의도 국회를 점령할 때, 계엄군을 막아섰던 시민들의 유튜브 생방송과 오버랩됐다. 한국 최초 노벨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의미를 물었다고 한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 대한민국을 살렸다는 것에 공감한다.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이 땅에 봄이 오면, 소리 없이 스러졌던 영혼들이 흰빛 꽃잎이 돼 우리네 가슴 속에 또 하나의 목련을 피우는 것을’ 1988년 4월 중학생 시인 박용주의 시, ‘목련이 진들’은 같은 해 전남대학교 주최 5월 문학상에 장원했다. 순백의 꽃 목련은 5월이 되기 전, 3~4월에 피었다가 곧 져버린다. 그러나 그 꽃은 다음 해에 다시 핀다.
2017년 개봉한 송강호 주연의 영화 ‘택시운전사’와 2007년 김상경 주연의 ‘화려한 휴가’는 5월 광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한자 만(滿)자는 물이 가득 찬 모양을 본뜬 것이다. 꽃이 아직 만개(滿開)한 시절이 아니므로 소만이라고 했다. 작은 만족에 설레는 시절이다. 24절기 중 5월 하순 여름 초입 절기 소만(小滿)은 있고 대만(大滿)은 없다. 지나친 만족을 경계하라는 것 같다. 대만(大滿)이 없는 이유가 이렇다. 이제 모심기로 한 참 바쁠 때다. 날씨는 더워지기 시작한다. 이때, 덥다고 창문 열어놓고 잠자리에 들면 여름 감기 딱 걸리기 좋다. 더위 찾아오는 소만은 환절기 건강 관리하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고려사’ 달력 편에 소만 이후 15일 중에 초후 5일은 ‘씀바귀가 무성하다’ 차후 5일은 ‘냉이가 말라 죽는다’ 그리고 말후 5일은 ‘약간의 더위가 온다’고 기재됐다. 이 시절은 약재로 쓰이는 씀바귀 철이다. 꽃말이 ‘순박함’과 ‘헌신’이란다. 그리고 봄나물인 냉이는 이때를 기점으로 바통 터치할 태세다. 기후도 무더위와 강추위 때와는 다르다. 요컨대, 여름 절기 중, 가장 더울 때 하지 넘어 소서와 대서가 있다. 그리고 동지 지나 소한과 대한이 있다. 하지와 동지의 대칭은 절묘하다.
소만 철이 되면 여기저기 설명 중, 씀바귀 얘기가 나온다. 난데없지 않다. ‘고려사’ 달력 편이 출처이다. 이 달력이 중국에서 전해졌기 때문에 고대 동북아시아 시선은 이맘때쯤 같은 방향에서 씀바귀를 찾았다. 고려시대 사람도 소만에 쓰디쓴 씀바귀를 알고 있었다. 그 맛을 아는 사람을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요즘 우리 애들은 이 맛을 모른다. 표현하자면 쌉싸름하다고나 할까. 좋은 약은 입에 쓰다. 그래서 씀바귀 뿌리는 약재가 됐다. 간 건강, 피로회복, 항산화 기능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씀바귀 잎은 데쳐서 나물로 해 먹었다.
입맛 감지 능력을 갖춘 혀끝은 마치 연어가 태어난 곳을 다시 찾아가는 것 같이 최첨단 센서를 장착했다. 나물 문화가 유독 발달했던 것은 옛사람들의 손맛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보릿고개를 이겨내려는 안간힘이 만들어낸 역설이었다. 들판의 보리는 누렇게 다 익어 수확하고, 다시 모를 심어야 한다. 초여름 날씨이다. 소만을 통해 여름 문턱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