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경험 진득하게 투영" 아픔에서 건져올린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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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

"삶 경험 진득하게 투영" 아픔에서 건져올린 시편

■42년만에 첫 시집 낸 김수 시인
시학서 ‘끝내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다’ 펴내
1980년대~현재 삶 망라 4부 구성 54편 수록
" ‘마음 수행’의 시학"…동학과 혼 등 쓰고파
출판회 30일 오후 4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문학활동을 벌인지 42년만에 늦깎이 시집을 펴낸 광주 광산 출생 김수 시인.
【광주작가】문학활동을 벌인지 42년만에 늦깎이 시집이 나와 주목된다. 1982년 ‘광주젊은벗들’에 들어가 당시 글 꽤나 쓴다 하는 사람들과 함께 창작활동을 벌이며 시대에 대한 고민들을 공유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1983년 3월 12일 YMCA 백제실에서 진행된 ‘제2회 광주젊은벗들 시낭송의 밤’에서 ‘부활’, ‘너는 누구냐’ 등 2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활동을 펼쳤다.

그렇게 문학활동을 지근거리에서 하는 듯한 생활이 계속되다가 2019년 광주전남작가회의 반년간 ‘작가’지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가 처음 발을 디뎠던 ‘광주젊은벗들’은 박선욱 조진태 이승철 정삼수 장주섭 이형권 박정모 박정열 박학봉 장헌권 시인 등이 참여해 활동을 펼쳤다. ‘광주젊은벗들’에는 열린 구조를 갖고 행사 취지에 공감한 17명의 문학청년들이 동인으로 참여했다. 1982년 12월 23일부터 1983년 10월 22일까지 10개월 동안 광주 시내 한복판에서 세 차례의 시낭송과 1차례의 시화전을 개최, 1980년대 초반 전두환 폭압정권 치하에서 문학운동을 선도했다. 당시 이 동인은 시대를 고민하고 문청으로서의 삶을 살아내고자 했던 이들의 결집체였다. 그의 문학 출발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사회운동을 펼치는 등 오랜 부침의 시간을 뚫고 시단으로 돌아온 셈이다. 주인공은 광주 광산 출생 김수 시인(66·본명 김형수·광주평화포럼 상임대표)이다. 김 시인은 시와시학시인선 35번째 권으로 첫 시집 ‘끝내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다’(시학 刊)를 내놓았다.

특히 이번 시집은 문득 찾아온 암으로 인한 투병생활을 해오면서 느낀 삶의 소회와 뜨겁게 달아올랐던 지난날들의 단상, 줄곧 바라봤던 세상의 풍경, 소소한 일상과 그 단상들 등 파노라마처럼 폭넓게 펼쳐진 시적 사유들을 한땀한땀 기워내고 있다.

그의 시적 촉수는 현재적 아픔인 암 투병과 동학 공부로부터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 나주 불회사에 머물렀던 기억, 1980년대 사회운동과 농민운동, 노동자대투쟁 등에 가닿고 있는 듯하다.

시인의 이번 시집이 마음 수행을 드러내는 시편이 중심에 서 있고, 그 수행의 길에 동학과 불교가 동행하며 마음의 눈으로 오늘의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간존재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는 평이 따르는 것은 그의 이런 삶과 무관치 않다.

시인에게 마음은 단순한 감정의 주머니가 아니라 수행과 변화를 거쳐 비로소 자리를 찾는 살아가는 존재로 드러난다. ‘마음’이라는 존재의 본질과 그것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깨어나고 치유되며, 마침내 해탈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내면 수행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시 ‘겨울숲’에는 이런 시적 흐름이 잘 포착된다.

그는 “겨울 숲을 바라본 사람은 안다/ 곧고 잘 자란 나무들과/ 굽고 휘어진 나무들이/ 따로 또 같이 살아가기 위해/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 겨울 숲의 나무를 안아본 사람은 안다/ 잘난 체 웃자란 곧은 나무들과/ 못생기고 투박한 굽은 나무들이/ 따로 또 같이 살아가기 위해/ 햇빛과 바람을 품고 있다는 것을”이라고 노래한다.

인생 경험이 진득하게 묻어있는 시편으로, ‘아포리즘’적 시학을 보여주고 있는 이 시는 그가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 빚어낸 것이어서 독자들의 시적 이해를 매우 설득력있게 끌어갈 전망이다. 존재의 고통과 후회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한 단계 초월하는 길로 전환하려는 시적 주체의 내면 서정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겉표지
수록작 중 ‘겨울 숲’ 외에도 ‘빛’과 ‘땅끝에서’, ‘알’, ‘암 선고를 받던 날’, ‘풍경’, ‘송정리 단상’, ‘사랑이 찾아온 순간’, ‘산다는 것은’ 등의 시편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시집의 표제작 ‘끝내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다’는 시인 자신의 자책과 회한, 그리고 내면의 침묵으로 빚어진 작품으로, 시의 화자는 결핍을 탓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현실에 다가서는 ‘당신’의 마음에 젖어든다. 여기서 ‘끝내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다’는 고백은 언어 너머의 참회이자, 말하지 못한 것을 통해 더 깊이 말하는 역설적 수행의 언어이다. 시적 화자는 불안전한 삶을 통해 ‘완전한 마음의 태도’를 모색하는 생의 길에 서 있는 듯하다.

또 시인의 시 세계는 수행의 길을 따라 사적인 고요에서 시작해, 공적인 절규로 확장된다. 그의 시는 단지 ‘안으로 향하는 마음’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마음은 역사와 사회의 아픔을 직시하고, 상처 입은 타자의 고통에 깊이 공명한다. 5·18광주민중항쟁, 제주4·3항재, 노동운동,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이 땅의 비극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분노와 절망보다 더 깊은 ‘함께 아파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정의와 평화, 자유를 염원하는 진심이 뜨겁게 흐르고 있는데, 이는 마음 수행의 사회적 확장으로 정리된다. ‘금남로 연서’나 ‘나는 하늘을 보았네’ 같은 시편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하겠다.

‘거리마다 주먹밥을 나누고 피를 나누며/ 공포와 죽음 속에서도 고립된 광주는 하나가 되었지/ 그날 이후로 멈출 수 없는 노래는/ 영산강을 건너, 저 산맥을 넘어 메아리로 흐르고 있지’(‘금남로 연서’)라고, “나는/ 금남로 ‘전일245빌딩’ 옥상에서/ 하늘을 보았네// 빛숨을 품고서 내려오는/ 무등산 너머 환한 미소에서/ 오래된 마음의 음성을 들었네//…중략…// ‘전일245빌딩’ 옥상에서 나는 보았네!”(‘나는 하늘을 보았네’)라고 각각 읊고 있다.

이번 시집은 지리산 둘레길 투어를 하며 느꼈던 사유들과 이태원 참사를 보며 느낀 단상, 역사적인 것들, 개인사, 미래 희망 등을 투영, 제4부로 구성됐으며 54편의 시가 수록됐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를 응시하면서, 역사의 주체로 살아갔던 ‘마음의 기록’을 시어로 옮겼다. 이는 시대적 질문을 품은 ‘문학적 실천’이며 ‘사회적 성찰’로 읽힌다. 시인의 ‘하늘’은 그 하늘 속에서 오래된 슬픔과 절규,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사명을 동시에 묻는다.

시집 양면
그의 시편들에 대해 김준태 시인은 “김수 시인의 첫 시집은 인생 경험이 진득하게 묻어있는 가작의 시편이다. 최근 광주권에서 출판된 시집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백수인 시인(조선대 명예교수)는 “김수의 시는 사회와 역사, 인간존재의 고통을 ‘마음 수행’의 시학으로 정면 응시하고 있다”고 각각 평했다.

시집 출간 소감과 관련해 시인은 “60대 중반을 맞아 내는 시집이어서 지금의 수준에 맞는지를 자문하곤 했으며, 주변 문단 선배들에게 도움말을 들으며 시적 방향을 다잡았다. 지금도 치유 과정이지만 내가 아파서 그 아픔을 투영한 시들이 많다. 그렇더라도 독자들이 읽을텐데 부끄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보통 시집의 첫번째 작품은 등단작이고, 마지막 작품은 다음 시집의 방향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들었다. 제 시집의 마지막 시 역시 그렇다. 마지막 시편은 동학에 나오는 ‘시천 길’이었다”면서 “다음 시집에서는 동학에 관한 시를 쓰고 싶고,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가 담겨진 혼을 조망하는 시편들과 역사적 현장을 답사해 그 단상들을 한편의 시로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 시인은 (사)광주평화포럼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이번 시집 출간 전에 자전에세이집 ‘그날이 오면’을 펴낸 바 있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30일 오후 4시 광주5·18민주화운동기록관 7층 다목적강당에서 열린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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