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6년 만에 누명을 벗은 백모씨(75)와 딸(41), 박준영 변호사 등이 광주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외치고 있다. |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법 제2형사부 이의영 재판장은 살인 및 존속살해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던 백모씨(75)와 딸(41)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람은 2009년 7월 순천의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마시게 해 아내이자 어머니인 최모씨(당시 59세)와 지인 1명을 숨지게 하고, 주민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부녀가 부적절한 관계를 숨기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해 국민적 공분을 샀고, 사건은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1심은 무죄였으나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혀 백씨는 무기징역, 딸은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하지만 이들은 10년 만인 2022년 1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 4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심 재판은 항소심 판결을 대상으로 다시 시작됐다.
이번 재심의 쟁점은 검찰의 위법·강압 수사 여부였다.
백씨는 초등학교 중퇴로 한글을 읽지 못하지만, 당시 검찰은 ‘당사자 백씨가 직접 작성했다’는 장문의 자필 진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딸 백씨 역시 지적 능력이 낮은 상태에서 ‘아버지가 너를 범인으로 몰고 있다’는 등 회유와 협박성 발언 속에 자백을 강요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검찰의 이 같은 수사 행태를 명백한 위법 수사로 판단했다.
재심 재판부는 “지적 능력과 학력, 사회적 지위를 고려할 때 딸 백씨는 경계성지능(지능지수 74점)을 가진 사람으로, 신뢰관계인 동석 없이 진술을 강요받았다”며 “진술거부권 고지도 이뤄지지 않았고, 검찰은 단순한 의심을 근거로 반복적인 유도신문을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범행을 공모했다거나 부녀 관계가 부적절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검찰이 제시한 범행 동기와 방법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막걸리 구매 정황, 범행 가능성, 범행 후 행동 등 유죄를 뒷받침할 근거가 모두 무너졌다.
다만 딸 백씨가 다른 주민을 성범죄 가해자로 허위 지목한 부분에 대해서는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이 끝난 뒤 부녀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백씨 부녀는 “수사관과 검찰이 내세운 증거가 모두 거짓이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며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이어 “살인범이라는 낙인 때문에 마을을 떠나지도 못하고 숨어 살았다”며 “진범이 잡혀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을 변호한 박준영 변호사는 “사소한 억울함도 견디기 어려운 법인데, 이들은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16년을 버텨야 했다”며 “이제라도 백 부녀가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재심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대법원 상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상고권은 광주고검에 있으나 실무는 순천지청이 맡고 있어, 최종 결정까지는 며칠이 더 걸릴 전망이다.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임영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5.10.29 (수) 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