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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
도발적인 그래피티 작품으로 유명한 뱅크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동상의 설치 영상을 공개하며 본인의 작품임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이 작품은 공개되자마자 곧장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소셜 미디어에는 시대의 초상을 관통하는 명작이라는 찬사가 쏟아졌고, 주요 외신들 역시 이 작품에 ‘깃발에 눈이 가려진 남자(Man Blinded by the Flag)’라는 이름을 붙이며 비중 있게 다루었다.
BBC 팟캐스트 시리즈 ‘뱅크시 스토리’의 제작자인 제임스 피크는 “권력을 쥐고 거만하게 행동하는 남자를 훌륭하게 풍자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깃발이 그의 시야를 완전히 가린 채 추락 직전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BBC 보도 인용)
소셜미디어의 반응도 뜨거웠다. 뱅크시의 인스타그램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앞으로만 움직이는 집단적 맹목성에 대한 강력한 선언 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또 다른 이용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교조주의에 눈이 멀면 결국 나락으로 간다는 뜻”이라며 본질을 꿰뚫는 작품평을 남기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맹목적인 선동과 추종이 이끄는 현대 사회의 자화상으로 읽어낸 것이다.
깃발의 의미는 본래 단순하다. 개인에게는 강력한 소속감을, 공동체에는 확고한 정체성을 심어주는 징표다. 나아가 같은 뜻을 품고 전진하게 만드는 결집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뱅크시는 이 상징이 도리어 우리의 눈을 가려버린다는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동상 속 남자는 확신에 찬 채 앞으로 나아가지만, 정작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보지 못한다. 움켜쥔 깃발이 자신의 눈을 철저하게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의 깃발 아래로만 시선을 모으는 집단적 맹목성은, 필연적으로 타자를 향해 경계선을 긋는 배타성으로 이어진다. 내부의 결속이 단단해질수록 외부를 향한 포용의 문은 거대한 장벽으로 변모하기 마련이다. 결국 작품 속 남성의 눈을 철저하게 가려버린 깃발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맹목적 추종과 폐쇄적 신념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메타포다.
오늘날 우리는 저마다의 깃발을 치켜든 채 살아간다. 국가와 이념, 진영과 팬덤, 심지어 취향을 규정하는 알고리즘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내용도 다양하다. 깃발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힘이 되지만, 동시에 타인을 철저하게 갈라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깃발의 양면성은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데이’ 사태와도 고스란히 연결된다. 스타벅스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당일, 광주를 짓밟았던 ‘탱크’라는 표현과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책상에 탁’이라는 홍보 문구를 전면에 내건 최악의 홍보 마케팅을 벌였다. 이는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광주의 피눈물과 박종철 열사의 비극적 죽음을 조롱하는 동시에, 엄숙한 역사적 상흔을 판촉 수단으로 전락시킨 야만적인 폭력이었다.
사태 직후 신세계그룹이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경질했으나, 이번 논란을 단순한 마케팅 부서의 일탈이나 실수로 치부할 수 없다. 그 배경에는 공동체의 상처를 성찰하지 못하는 역사적 감수성 결여와 사회적 책무를 외면한 비윤리적 기업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SNS를 통해 자극적인 ‘멸공’ 서사를 반복하며 기업의 공적 책임을 가볍게 여겨온 정용진 회장의 행보는, 그룹 전반의 윤리적 기준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
뱅크시가 포착한 ‘깃발에 눈이 가려진 남자’처럼 위태로운 걸음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는 맹목적이고 폐쇄적인 신념은 결국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안내한다. 역사적 비극을 판촉 수단으로 소비한 이번 스타벅스 사태야말로 그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증명한 셈이다.
눈먼 남자는 지금도 앞을 보지 못한 채 위험천만한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눈을 가린 깃발을 걷어내는 것, 그것이 추락을 멈추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강혜경 gn@gwangnam.co.kr
강혜경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5.21 (목) 19: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