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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광주문화재단 전문위원 |
사실 인문주의의 역사는 인간의 ‘생각’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를 탐구했고, 로마는 이를 공공의 교양과 시민정신으로 확장했다. 이후 중세를 거치며 잊혀졌던 고전은 아랍 학자들에 의해 번역·보존됐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는 아랍 학자들의 번역과 해석을 거치며 유럽 지성사에 다시 큰 영향을 끼쳤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동로마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이동하면서 고전 연구와 인문주의의 확산에 더욱 힘이 실렸다. 결국 인문주의는 언제나 “인간은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역사였다.
오늘날 세계의 인문축제 역시 같은 흐름 위에 놓여 있다.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이나 독일 카셀 도쿠멘타 같은 축제들은 단순한 공연과 전시를 넘어 인간과 사회, 공동체의 질문을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최근에는 영국 헤이 페스티벌(Hay Festival), 미국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처럼 책과 강연 중심이던 인문축제가 자연 체험, 사운드 아트, 명상, 산책, 침묵 독서 등 감각 중심 프로그램으로 강화하고 있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느린 경험’을 원한다. 이제 인문축제는 지식을 전달하는 행사를 넘어, 사유의 속도를 회복하는 문화적 장치로 진화하고 있다.
광주 동구의 무등산 인문축제 또한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방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존의 ‘인문 For:rest’가 숲과 휴식을 중심으로 했다면, 올해의 ‘무등생각’은 ‘생각의 순환’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운다. ‘인문’ 대신 ‘생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어렵고 무거운 담론 대신 시민 누구나 자신의 언어로 참여할 수 있는 공통의 감각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특히 ‘OFF 생각을 끄는 숲’ 프로그램은 디지털 시대의 인문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몸짓 퍼포먼스 ‘숲이 된 사람들’은 언어를 최소화하고 몸과 소리만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표현한다.
시 낭독회 ‘눕독눕독’은 편백숲에 누워 시의 문장을 천천히 듣게 만들고,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 ‘마음의 숲’은 참가자들이 휴대전화를 반납한 채 숲에 머물도록 제안한다. 침묵 독서 ‘책 읽는 숲’은 자기소개나 토론 없이 오직 읽기에만 몰입하는 시간을 만든다. LP 청음회 ‘동무다방’은 아날로그 사운드 속에서 오래된 가사의 문장을 다시 음미하게 한다. 이 프로그램들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감각의 복권’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삶은 릴스와 쇼츠, 알고리즘 기반 영상 콘텐츠 속에서 끊임없이 분절된다. 텍스트는 짧아지고 사유는 압축된다.
AI는 인간 대신 정보를 정리하고 문장을 생성한다. 이제 인간은 지식을 소유하기보다 즉시 호출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정보 접근의 편리함이 깊은 이해와 성찰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자극은 인간의 집중력과 사유 능력을 소모하게 한다. 그래서 오늘날 인문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인문학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힘을 회복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꺼운 책 한 권을 천천히 읽는 행위는 단순한 독서가 아니다. 뇌과학적으로도 깊은 읽기는 집중력과 공감 능력, 장기 기억과 상상력을 활성화하는 과정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디지털 정보와 달리, 책은 인간의 사유를 오래 붙잡아두는 매체다.
철학자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문화는 깊이 있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잉 자극의 시대 속에서 인간이 ‘깊은 심심함’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깊은 심심함은 단순한 무료함이 아니다. 새로운 사유와 창조가 시작되는 정신적 이완의 상태다. 귀 기울여 듣고, 오래 바라보고, 천천히 생각하는 힘은 그 느린 시간 속에서 탄생한다. 무등산 인문축제가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축제는 단순한 행사나 관광 콘텐츠가 아니다. 과잉 연결의 시대 속에서 잠시 세상의 소음을 끄고, 자기 자신의 생각과 다시 연결되는 시간에 대한 제안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무등산의 숲처럼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인문적 쉼의 공간인지도 모른다.
김지원 gn@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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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6 (화) 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