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시론]상점간판이 도시자산이 되는 시대 - 광남일보
[광남시론]상점간판이 도시자산이 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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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시론]상점간판이 도시자산이 되는 시대

조용준 광주시도시공사 사장

근래 어떤 신문에서 연재했던 ‘광주시간을 걷다’에서 50년 된 시계 수리점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수 천개의 시계와 부속품이 뒤섞여 놓여 있는 낡고 작은 진열장, 다양한 시계로 빽빽하게 채워진 좁은 벽면,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을 것 같은 오래된 작업대가 있는 4평 남짓 시계 수리점에서 노주인의 50년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장이 났거나 낡은 기능의 시계는 쓸모없는 설비처럼 취급하고, 수리보다는 버리고, 기능 좋은 새 것을 취하는 것이 생활패턴이 된지 오래인 상황에서 수리에만 힘써 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좀처럼 고장이 없는 시계등장과 함께 핸드폰 등의 생활필수품에도 시계기능이 첨가 되면서 시계는 더 이상 귀한 것이 되지 않은 환경에서는 자기철학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100여년 된 가업상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선진 외국 도시들과는 달리 새 것으로만 채워지고 있는 우리 도시들에서 그나마 ‘세월의 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세월의 켜는 해당 시대의 귀중한 기록으로써, 사람들은 이를 통해 지나간 세월의 삶 문화를 인식하고 교감한다. 또 각박한 도시에서 작은 여유를 만든다. 거기에 세월의 흐름을 겪게 되면 문화적 희소가치도 갖는다.

그런데 여기에 아쉬움도 있다. 기자가 취재 다음날 다시 가보니 행정에서 새로운 간판으로 교체를 한다면서 간판을 수거해 가서 취재사진이 마지막이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행정이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낡거나 무질서한 간판대신에 규격적이고 통일적인 새 간판을 달아 주려고 그리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간판은 상점의 특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구매 욕구를 증진시키는 상점의 정체성이다. 더구나 규격적이고 통일적 미는 가로풍경을 경직되게 하고, 활력을 떨어뜨리며, 개성을 억제한다.

또 현대인들은 획일적이고 통일된 단순미보다는 개개의 다양성과 독자성이 보장된 맥락미를 더 좋아한다. 이른바 복잡계 이론이다. 더구나 상점 간판은 민간영역으로써 상점간 경쟁의 표현이기 때문에 지나친 간섭은 간판의 다양성과 독자성을 저해할 수 도 있다.

선진 외국의 도시들에서 행정이 상점 간판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가이드 라인’ 등을 통해 과도한 디자인 등으로 인해 도시가 혼란스럽지 않도록 하는 역할만을 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야만 그 상점만의 간판이 될 수 있고 문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도시에서는 간판의 존재방식도 중요하다. 우리가 문화도시(또는 역사도시)라고 부르는 외국 도시들을 보면,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작은 상점이라고 하더라도 건물은 물론, 상점안의 풍경이나 간판까지도 도시공공재로 소중하게 취급한다.

이는 보석가게, 옷가게, 레스토랑, 커피숍, 꽃집 등이 즐비한 짤스 브르크의 게트 라이트 거리가 잘 말해준다. 이 거리는 중세시대부터 문맹자들이 상점내용을 쉽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 각기의 상품을 형상화한 돌출형 철제간판을 내걸어 왔는데, 지금도 200년 이상 된 간판이 걸려 있는 상점도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점들도 이에 어울리게 상품을 형상화한 철제 간판을 사용하고 있는데, 지금은 이것이 거리의 매력 되고 있다.

프라하에서는 지번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대문위에 있는 집주인의 직업을 상징하는 표식이 지금은 도시 자신이 되고 있다.

오사카대학의 나루미 교수는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인의 지원, 도시환경의 문화적 정비, 문화행정의 전개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간판도 예외는 아니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우리도시는 상점 간판도 문화적 정비, 문화행정의 관점이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문화수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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