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년 연장만이 해답이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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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년 연장만이 해답이 아닌 이유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11월 5일 국민의힘에서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해 2033년에 65세로 늘리는 이른바 정년 연장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 밝혔다. 국민연금 수급연령에 맞춰 정년을 연장하자는 취지다. 관련법안은 2025년 발의 예정하고 있다. 정권퇴진, 탄핵운동이 들끓는 가운데 여·야 및 노동계 입장이 유사한 보기 드문 모습이다. 2023년 1월 프랑스 정부는 연금 개혁법을 공포했다, 기존의 정년 및 연금 수령 시작 연령을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연장하고, 연금을 100% 수령하기 위한 근무 기간을 42년에서 2027년까지 43년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핵심은 ‘정년 연장’ 이다. 이에 프랑스 노동계를 중심으로 청년들까지 ‘안정적 노후보장’ ‘미래의 나와 내 부모를 위해’ 라는 구호가 프랑스 전역에 퍼졌고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세대 간 일자리 경쟁’으로 논의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맥락이다. 이유가 뭘까. 프랑스에서의 정년은 곧 연금을 수령하는 나이를 의미한다. 공적연금 수급 연령과 법정 정년이 일치하기에 정년 연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만이 일치하지 않는다. 정년이 없는 국가도 있으나 고용계약이나 단체협약을 통해 정년을 개별적으로 정할 때 반드시 연금 수급연령 이후로 설정하도록 한다.

한국의 법정 정년은 60세이고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현재 만 63세이다. 문제는 정년까지 일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라는 것이다. 2023년 통계청의 조사 결과를 보면 정년제를 운용하는 기업은 전체 기업의 21.2%로 나타난다. 특히 대규모 사업체, 노조가 있는 사업장일수록 정년제 운용 비율이 높았다. 300인 이상 기업 94.6%, 유노조 기업 95.7%에 정년제도가 있다. 300인 미만 기업의 경우 21.0%, 노조가 없는 기업의 경우 17.8%만이 정년제를 운용한다. 사실상 정년제 존재가 무의미 하다. 정년 연장의 혜택 또한 유노조 대기업, 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부터 누리게 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불균형은 이렇게 나타난다.

한국은 기업별 임금 격차가 선진국보다 크게 차이 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500인 이상 대기업 대비 평균임금 비중은 54.2%로 나타난다. 지역으로 올수록 이는 심화된다. 올해 1월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와 목포본부가 공동으로 연구한 ‘광주·전남지역 청년고용 부진 원인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광주·전남지역 중소기업 노동자는 대기업 노동자의 70~80%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광역자치단체 중 상위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2차 노동시장(비정규직-중소기업)에서 1차 노동시장(정규직-대기업)으로 이동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지역 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심화는 청년층의 노동 공급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자리들은 대부분 근무 기간이 길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호봉제를 채택한다. 공공부문에서 20만명 가까운 인원이 정규직화됐지만 역설적으로 민간부문 비정규직은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인 845먼명을 기록했다. 비정규직조차도 아닌, 프리랜서-플랫폼 등 비정형 노동자는 400만명을 넘었으며 매해 계속 늘고 있다.

필자는 노동시장 전반에 걸친 내부 이중구조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OECD는 높은 청년 실업률 원인이 고령자의 노동시장 장기체류에 있다고 보고 고령층의 조기퇴직을 유인하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그 후 10여년간 청년층 실업은 더 심각해졌다. 고령자고용과 청년실업은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 OECD는 결국 권고안을 폐지했다. 정년이 줄어드는 것 또한 일자리를 생성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런데도 정년 연장에 있어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이 주된 논의로 떠오른다. 보건복지부가 작년에 발표한 ‘2023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년층이 일하는 이유 중 77%는 생계비 마련이었다.

65세 이상 직업별 취업자 분포를 보면 단순 노무 종사자가 35.6%로 가장 높다. 건설, 배달, 청소, 경비 등이 이에 포함된다. 임금이 낮고 불안정한 일자리들이 주가 된다. 정년 연장이 해답이 아닌 이유는 이것에 있다. 더 긴 기간을 일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이 더 많은 금액을 받는 지금의 연금구조는 대기업에서 정년을 채우고 퇴직한 이들에게만 유리하다.

대기업 입사 유무가 노후까지 결정해 버리는, 입직의 우연이 만든 행운은 노동시장 내부 격차를 더 견고하게 만든다.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바로 임금 테이블이다. 근속 연수와 기업의 지불능력, 고용 형태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지금의 노동시장은 정의롭지 않다. 앞서 언급한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평균임금 격차에서도 나타나듯, 결국 소속 기업이 돈이 많냐 적으냐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 대기업 사업장에서는 원-하청의 업무가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연공급제는 유의미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없애고 기업이 비정규직을 쓰는 유인을 줄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임금 테이블이 필요하다. 연공급은 논리상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충돌한다. 같은 일을 해도 연차에 따라 다른 임금을 주기 때문이다. 이제는 직무급제에 대해 말해야 한다. 직무급제는 일의 결과에 따라 분배하는 성과급제와는 다르게 하는 일의 성격과 난이도에 따라 임금을 주는 체계다. 기회의 평등만으로 맞서기엔 이미 한국 노동시장이 처한 불평등은 너무 거대하다. 경쟁방식의 공정에만 집중하기보다 기회구조 자체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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