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원짜리 해물탕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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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7000원짜리 해물탕의 교훈

백승현 대동문화 전문위원

백승현 대동문화 전문위원
[문화산책]2023년 11월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영화가 2025년 4월에 재개봉되어 많은 관객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영화 플랫폼에서 이 영화를 봤다. ‘어른 김장하’.

문형배 판사가 2011년 2월 진주지원으로 발령이 났다. 오랜만에 뵌 김장하 선생님께 식사 한 번 대접하고 싶었다. “공직자가 사는 밥은 먹을 수 없다.” 단호히 거절했다. 1년 후 인사 발령이 나서 진주를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김장하 선생님을 찾아뵈려고 청했지만 선생은 이번에도 거절했다. “제 마음도 알아주십시오. 언제 제가 또 선생님을 뵙겠습니까?” 아득바득 우겨 겨우 승낙을 얻었고 판사는 김장하 선생에게 해물탕 한 그릇을 대접했다. 해물탕은 7000원이었다.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고,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 김장하 선생은 판사에게 이런 당부를 또 잊지 않았다.

2019년 4월 9일 국회에서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 인사청문회가 열렸는데 첫머리에 후보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독지가인 김장하 선생을 만나 대학교 4학년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업사로서 번 돈으로 명신고등학교를 건립하여 경상남도에 기증하였고 수백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으며 진주 형평운동 기념사업회, 진주 오광대 복원 사업, 경상대학교 남명관 건립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선생은 저에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히 연결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셨습니다.”

‘어른 김장하’와 2025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재판관 전원 일치로 인용하며 역사적 판결문을 작성한 ‘문형배 헌법재판관’, 그리고 그 판결을 위해 혹독한 겨울에 거리에 나와 ‘탄핵’을 외친 국민들 사이에 선한 영향력의 ‘나비 효과’가 이어졌다. 그 나비떼의 날갯짓이 찾아간 곳은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였다.

지난 4월 10일엔 광주에서 춤과 춤꾼의 에피소드극 ‘별, 빛 맞춤’ 공연이 있어서 공연장을 찾았다. 이 공연은 5·18 시민군 기획실장 김영철 열사의 딸 춤꾼 김연우씨가 공연 단체 ‘몸짓 플러스 나비연’과 놀이패 ‘신명’의 단원들과 협력해 만든 무대였다. ‘나비연’은 ‘나비처럼 춤을 춘다’는 뜻일 것이다. 김연우씨는 이 ‘나비연’의 단장이다.

그의 아버지는 5·18 때 시민군 기획실장으로 5월 27일 새벽 계엄군에 맞서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가 총상을 입었다. 계엄군에 체포된 뒤 혹독한 수사를 받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김영철 열사는 1981년 석방됐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을 오가는 등 18년 간 힘들게 투병하다가 1998년 8월 16일 영면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들불 야학’의 삼촌들 즉 박용준, 윤상원, 박관현, 신영일, 박효선 등과 그 ‘들불 야학’ 있던 ‘광천동 시민아파트’ 그리고 5·18의 기억, 아버지와의 마지막 이별과 이후 열사의 딸로 살아왔던 삶, 어머니 김순자 여사의 고단했던 삶 등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만든 춤극이었다. 그때 연우씨는 어머니 배 속에 있었다. 1980년 생이다.

‘들불야학’은 1978년 시작되어 1981년까지 이어진 광주 최초의 노동야학으로 군부독재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수업을 이어가던 중 1980년 5·18민중항쟁 때는 항쟁의 지도부가 되고 ‘투사회보’를 만들어 항쟁의 진실을 알렸다. 그러다가 7명의 들불열사들은 하늘의 별이 됐다. 그리고 그들을 비롯한 수많은 별들이 5·18로 이루려던 대동 세상의 이념을 오늘의 ‘민주 인권 평화’의 고장 광주를 만들었고, 그것은 곧 광주 정신을 만든 빛줄기였다.

연우씨가 이 공연으로 염원한 것은 그 ‘별들’과 그들이 우리에게 던져준 ‘빛’ 그리고 그 때문에 대한민국의 민주 역사가 이루어져 온 이 광주라는 고장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었다. 오월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무용가로서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연우씨는 말했다. 연우씨가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명작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흥학(興學)은 학교 교육을 통해 옳고 바른 품성을 지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고, 교민(敎民)은 주민의 교양을 높여 문화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목민심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예(禮)는 도덕을 가르치는 인성교육, 악(樂)은 삶을 고양시키는 예술교육이다. 그렇게 말하고선 다산 정약용 선생은 또 이렇게 강조한다. “학문을 가르치는 스승이 중요하다. 스승이 없고서는 교육을 시작할 수도 없다. 목민관은 스승이 학문을 가르쳐서 사람의 품성을 기르는 도덕과 예술교육을 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육과 문화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지역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 제전을 열어야 한다.”

옛적의 목민관, 지금으로는 지방자치 행정기관의 장들과 공무원들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일이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광주 정신의 문화적 승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5·18의 정신을 오해하는 것이다. 예악이 흥성하지 않은 도시는 미래가 없다. 우리가 문화도시를 꿈꾸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도시의 품격은 모든 시민들의 꿈의 날갯짓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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