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소 잃고서도 외양간을 안 고치면?
검색 입력폼
독자권익위원 칼럼

[독자권익위원 칼럼]소 잃고서도 외양간을 안 고치면?

이지안 잇다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지난 주말 광주에 또다시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이에 따라 광주 신안동 일대가 침수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몇 주전 내린 폭우로 지역 내 곳곳이 침수되면서 겨우 복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이번 비로 인해 또다시 침수 피해를 보게 됐다.

신안동 뿐만 아니라 비만 오면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지역이 있다. 광주만 해도 북구 문흥동, 남구 백운광장, 서구 금호동과 광천사거리, 광산구 선운지구와 평동 일대 등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지역이 있으며 광주 뿐만이 아니라 전국이 다 마찬가지다.

광산구 선운지구가 고향인 내가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 연일 내린 비로 황룡강 둑이 무너진 적이 있다. 성인 남성들의 가슴 높이 정도까지 마을이 물에 잠겼고 마을 주민들이 모두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갔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어린아이였던 나는 동네 아저씨가 목말을 태워 마을을 빠져나갔던 기억이 있다. 발끝에서 흙탕물이 찰랑거리는데 혹여나 아저씨가 나를 떨어트릴까 봐 얼마나 겁이 나던지.

또 한번은 고등학교 때 영광통 지하차도가 여름철 폭우로 인해 물에 잠겼었다. 엄마가 그 폭우를 뚫고 학원에 있던 나를 데리러 왔었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 잠겨버린 지하차도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때도 비가 많이 내리긴 했지만 몇년 전부터는 유독 폭우가 내리는 횟수나 시간당 내리는 양이 많아졌다. 이 모든 건 기후변화로 인해 한국의 날씨가 동남아처럼 변해버려서다. 더위가 빨리 찾아왔다가 늦게 물러가 1년 중 여름이 가장 길어졌고 비가 내리면 단시간에 수십 밀리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물을 들이붓는 것처럼 비가 내리니 지대가 낮은 곳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대가 낮은 지역들은 매년 상습적으로 침수돼도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집과 상가가 잠겨 지역 주민과 상인들이 매번 피해를 겪고 있는데도 ‘지대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감수해야 하는 걸까?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는 걸까?

항상 비가 올 때마다 쓰레기나 낙엽이 배수로를 막아 침수가 발생했다. 이를 미리 막기 위해 남구에서는 맨홀 근처에 빗물받이를 설치했지만, 이번에도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북구는 199억원을 들여 빗물을 저장하는 우수저류시설 설치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내년 말에나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비가 내리고 침수가 발생하면 막힌 배수로나 맨홀을 막고 있는 쓰레기와 낙엽을 직접 치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모습들이 뉴스나 SNS 등에 올라올 때마다 사람들은 의인이다, 멋지다, 고맙다고 한다. 맞다. 그분들은 의인이고 멋지고, 고마운 존재들이다. 한편으로는 마음을 졸이기도 한다. 그분들이 아무 사고 없이 귀가한 것까지 소식을 접했을 때에야 안심을 하는 것이다.

발목 이상 물이 차고 흙탕물이 되면 바닥 상태를 알 수가 없다. 간혹 맨홀 뚜껑이 사라졌는데도 모르고 걷다가 빠지거나, 막힌 배수로를 청소하겠다고 갔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위험하니 일반인이 아니라 공무원이 해야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공무원도 똑같은 사람이고 위험 앞에서 생사가 오가는 것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대신, 공무원들은 지역에서 매년 반복되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 주민이 불편을 호소하는 것들을 귀담아듣고 해결책을 세워야 한다. 피해가 눈에 확연히 보이는데도 예산이 없다는 말로 미뤄서는 안 된다. 노후화된 배수로를 정비하고 우수저류시설도 마련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침수 피해를 복구하는 건 외양간을 고치는 것일 뿐 또다시 외양간이 부실해지게 둬서는 안 된다. 그런데 침수 피해가 생기는 게 한두 해가 아닌데도 매번 반복되는 건 외양간이 부서질 걸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

일이 터진 다음에 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미리 예방한다면 손해도 피해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