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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

일상 안팎의 지점들서 치유의 서정 모색

함진원 제4시집 ‘가만히 불러 보는 이름’
삶의 자취 펼쳐…총 4부 구성 60편 수록

시집 표지
“오랜 겨울을 보내면서 마음은 의지할 데 없이 쓸쓸했지만, 고요가 깃들면서 캄캄한 밤은 지나고 아침이 왔네요. 아침이 오는 길목에 꽃씨를 심으려고 합니다.”

이는 광주를 연고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남 함평 출생 함진원 시인이 최근 펴낸 네 번째 시집 ‘가만히 불러 보는 이름’(문학들 刊)의 서문에서 밝힌 말이다.

이번 시집은 꽃씨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한 편 한 편을 쓴 듯하다. 12·3비상계엄 이후 한국이라는 꽃잎이 마구 떨어져내리는 상실 앞에서 시인 역시 처참한 심경으로 목도했을 터다.

그 심경의 긍정적 에너지들을 끌어올려 상실을 채워넣으려고 떨어진 꽃잎 자리에 또 다른 꽃으로 공허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창작의 산고를 기꺼이 감수했을 것이다.

시인의 시는 일상 공간에서 바라본 풍경들을 스펀지 물 빨아들이듯 투영한다. 그것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노래하는 자의 직무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자취들을 아스라하게 펼친다.

시인의 시 ‘한동안 들국처럼’처럼은 마치 시인의 일상 컷을 들여보다보듯, 그의 시간들이 적나라하게 읽힌다.

시인은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데/종이학을 접으며/은혜 이모 올 것 같냐고 묻기도 했지요/비 맞은 그리움이 살구꽃으로 피면/이모는 올 거야 그렇게 믿으면 온다고 했어/적막한 집에 열한 살 어른이/여문 감자처럼 자라도/쌓여 가는 기다림은 오지 않고/모난 하루 넘어 이틀/기다리지 않아도 안 오는 하루/한동안 들국처럼 우두커니 동그라미 그리며/은혜 이모 올까 안 올까 안 올까’(‘한동안 들국처럼’ 전문)라고 노래한다. 비가 오는 날 이모를 기다리며 드러난 여러 심정들이 포착된다. 이모는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의 대표명사일 것이다. 시인이 이 시를 그냥 기술했다면 시가 되지 않았을텐데 시가 가질 수 있는, 어떤 형상화나 비유가 적절하게 압축돼 펼쳐져 시적 여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적막한 집’과 ‘열한 살 어른’, 그리고 자라는 것을 ‘여문 감자’에 비유하는 시인의 시적 감수성이 좋았다.

‘한동안 들국처럼’은 시적 이미지와 시인의 감수성이 조화돼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시라면, 그 앞 페이지에 실린 ‘꽃차를 만들면서’는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의 상을 만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시인은 ‘메리골드 피면 더더욱 생각나는/집 나가서 아직 안 돌아온 메리랑/동생 생각으로 눈에 좋은 꽃차를 만들면서/이 생각 저 생각으로 찻물 끓이는데/가만 가만히 부르는 소리’(‘꽃차를 만들면서’ 일부)라고 읊는다, 그래서 아예 이미지를 만들어 주지 않았지만 ‘꽃차를 만들면서’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상이 있는데 그것을 의도했을까 궁금하다.

시인은 ‘가끔 속이 뒤집어지는 날’ 묻는 물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다. 이는 독자와 시인 자신에게 던지는 공통 질문이다. 삶의 근원과 본질에 관한 문제다. 전자는 실제이고, 후자는 현상에 관한 물음 같다. 그런데 그런 날 시인은 때로는 시크했다가 다분히 감상적 지점을 오가는 모양이다. ‘어느새 가을이 돌아서서 울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시인은 울적하다. 시인이 좌표찍듯 일상 안팎의 지점들을 찾아다니며 마음을 어루만졌지만 근본적 치유에는 이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새까만 속’은 삶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끝내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은 총 4부로 구성, 분주한 일상 틈틈이 창작해온 작품 60편이 실렸다.

고재종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실존적 불안과 우울 그리고 타나토스를 사회정치학적 상상력으로 거뜬히 이겨내며 삶을 다진다. 그런데 그 다진 삶이 어떤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세속적 방식이라기보다, 섬기고 사랑하고 자발적 가난의 길을 가는 순명의 삶이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인연도, 가족에게 헌신하는 시간도 힘들면 힘든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가꾸며 홍매화 피고 사과꽃 기다리는 자연의 이법을 따르고자 한다. 바로 그것이 ‘가만히 불러 보는 이름’의 그분에게 ‘섬기는 일’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시인의 결론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밝혔다.

함진원 시인은 전남 함평 출생으로 조선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199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시 ‘그해 여름의 사투리 調(조)’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인적 드문 숲길은 시작되었네’, ‘푸성귀 한 잎 집으로 가고 있다’, ‘눈 맑은 낙타를 만났다’를 펴냈으며, 연구서로 ‘김현승 시의 이미지 연구’가 있다. 기린 독서문화교육원을 설립하고 기린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치유 글쓰기와 책 읽기 독서 모임을 하는 등 책 읽는 사회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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