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박석면 시인(ⓒ김경주) |
![]() |
| 시집 표지 |
주인공은 민중시인으로 진혼가나 조국은 하나다 등의 시로 널리 알려진 김남주 시인의 시집 발간에 관여했으나 정작 자신의 작품을 펴내지 못하다가 고희를 맞아 뒤늦게 작품집 ‘무안’(문학들 刊)을 펴내게 된 전남 무안 출생 박석면씨가 그다. 박 시인은 일찍 시인의 자질을 가지고 활동을 펼쳤지만 시집과 연이 닿지 않아 자신의 작품집을 갖질 못했다. 그는 사회 운동이라는 것을 하면서도 늘 시의 울타리 안에 머물렀다. 하지만 사회 운동의 파고가 너무 높았다.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된 계기는 ‘함성지’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자신의 친형인 박석무(다산연구소 이사장·전 국회의원), 김정길, 이강, 김남주 등이 투옥되면서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1974년 광주일고 2학년 때 유신철폐 운동을 전개했고, 이듬해 김상진 열사 추도식을 주도하면서 제적당했다.
감옥에서 나온 김남주가 광주 장동 로타리 인근에 카프카 서점을 열었다. 카프카 서점은 군부독재 치하의 유일한 숨구멍이었고, 박 시인은 이곳에서 김남주와 함께 숙식하며 책을 읽고 시를 썼다. 제적생으로 백수와 다름없던 그가 왕성하게 시화전과 문학발표회를 치러 낸 것 모두 이곳에 기식할 때 이뤄진 일이었다. 어쩌면 김남주와 카프카 서점은 박 시인의 또 다른 고향이자 지울 수 없는 내면일지도 모른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그는 1977년 고향 무안으로 낙향했다. 배종열 씨의 추천으로 전국단위 크리스찬아카데미(의식화)교육을 이수하고 농촌 문제의 본질, 관과의 싸움, 농민권력 향상 등을 위한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이력으로 치자면 그는 농민운동사의 첫 장에 이름이 올라 있는 원로다. 그는 현재 광주·전남농민운동역사관 건립추진위원장이다. 한국 농민운동은 물론 민주화운동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아온 ‘함평고구마 사건’의 중심에도 그가 있었다.
농협 전남지부와 함평군 농협이 고구마 전량수매 공약을 불이행해 총 160농가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농민들이 피해보상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군단위 자생적 계조직인 ‘무안농사형제계’를 조직한 그는 1978년 선두에서 전국 73명의 전국 농민운동가와 8일간의 단식투쟁에 함께했다. 이른바 함평고구마 사건은 전국 단위 단식투쟁 돌입으로 번졌고 결국 당국이 피해보상 금액 309만원을 보상하고 마무리됐다. 함평고구마 사건 이후 군에서 휴가 나왔을 때 5·18을 겪은 그는 1982년 전남대에 입학, 이후 탈반민속연구회와 인사대 극회를 결성하고 공연 등 문화운동을 통해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이처럼 박 시인의 삶은 고요하지 못했다. 시를 무르익히고 할 여력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이영진 시인은 시집 발문에서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17살 때부터 박정희 군부독재와 맞짱을 뜨던 학생운동의 리더였다. 열혈청년이자 시를 쓰던 시인이었다”고 한 것만 봐도 대충 박 시인이 어떠 했을까 미루어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김님주 시인과의 인연이 드러난 시편들도 ‘카프카 서점’을 위시로 ‘전라도 시인’ 등 7편에 이른다.
시인은 ‘형님,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주위의 집들이 다 헐려 큰 빌딩이 들어서고/건설회사 사옥이 들어서고/고급 호텔이 들어섰는데/튀김집과 카프카 서점만이 그 자리에 남아/하나는 중국집으로/하나는 아메리카노를 파는 커피숍으로 이름만 바뀌었다니/정말 신기하지 않나요/형님의 꿈이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는 건 아닐까요’(시 ‘카프카 서점’ 일부)라고 노래한다.
앞서 언급했듯 발문은 이영진 시인, 표사는 박몽구 시인(계간 ‘시와문화’ 발행인), 인물 사진은 김경주 화가(전 동신대 교수) 등이 이 시집에 관여했다.
박몽구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박석면과는 고교 시절부터 ‘울림문학동인회’를 만들어 함께 시의 밭을 가꾸어 왔다. 그는 올곧은 생각을 굽히지 않는 성품이면서도 풍부한 시심을 지닌 사람이었다. 흙과 살면서 시쓰기를 그만둔 채 살아오는 모습을 항상 안타깝게 여겨왔는데, 나이 70이 되어서야 첫 시집을 내다니 참으로 기쁘다. 거짓이 없는 흙과 함께하는 시정신으로 그만의 시적 영토를 넓히길 빈다”고 전했다.
박석면 시인은 2022년 ‘무안문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시집 수록작인 ‘동전 두 개’나 ‘가설극장’, ‘껌을 씹으면서’ 등은 이미 1970년대 고교 재학 시절에 쓴 작품들이어서 등단 시기로 창작을 가늠하면 큰 코 다칠 수밖에 없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6.17 (수) 1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