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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준 (사)필문이선제선생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광산이씨 후손) |
2026년 제81주년 8·15 광복절을 맞이하여 열린 ‘광산이씨 일곡파 독립운동가 추모식’은 단지 한 문중의 조상을 기리는 자리를 넘어,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매우 특별한 궤적을 남긴 지역 공동체의 숭고한 정신을 재조명하는 역사적 이정표였다.
일곡 마을 독립운동이 지닌 학술적·역사적 의의는 그 투쟁의 형태가 개인의 단발적 의기나 우발적 혈기에 그치지 않고, 부자(父子)와 형제, 나아가 장인과 처남을 아우르는 굳건한 ‘혈연·친족 연대’ 속에서 전개되었다는 점에 있다.
일제의 가혹한 보안법과 정보망 속에서 독립운동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3대가 멸족될지도 모르는 연좌의 공포 앞에서도 광이 일곡의 선열들은 서로의 피와 신뢰를 밑거름 삼아 결사투쟁을 전개했다. 한 가문의 결의가 마을 전체로 확산되고, 나아가 광주 지역 3·1운동의 든든한 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윤호(1898~1931) 선생과 그의 일가가 서 있었다. 21세의 청년 이윤호는 광주 독립선언서 배포와 만세 시위를 주도하며 항일의 선봉에 섰고, 출옥 후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계 군자금 모금 등 구국 활동에 몸을 던지다 서른넷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부친 이주상 선생은 아들과 함께 만세 운동의 맨 앞에 섰을 뿐만 아니라, 일곡교회를 설립하여 민족교육과 계몽운동의 기초를 놓은 지역의 정신적 지주였다. 동생 이창호 선생 역시 부친과 형의 뜻을 따라 독립 만세를 외치며 투쟁에 동참했다.
이 단단한 항일의 가계는 처가와 사돈가로 선명하게 확장된다. 이윤호 선생의 장인 류한선 선생은 국민회 사건 등으로 엄혹한 옥고를 치르며 일관된 투쟁을 이어갔고, 처남 류계문 선생은 매형과 사돈 가문과 뜻을 같이하여 만세 현장을 이끌었다. 여기에 독립선언서를 직접 배포하며 주민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문중의 이병현 선생까지, 이들 6인의 독립운동가가 보여준 연대와 희생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도 보기 드문 ‘공동체적 항일 유산’이다.
조선의 위대한 역사가이자 호남을 세운 사림의 조종(祖宗), 단종의 스승이었던 필문 이선제(李先齊, 1390~1454) 선생의 후손인 일곡파는, 기축옥사의 화를 피해 무안 달리도에 피신했던 박사공 공충(公忠)의 직계 후손 이남 선생이 일곡에 터를 잡은 이래 수백 년간 효제충신(孝悌忠信)의 가풍을 이어온 유서 깊은 문중이다.
선조들이 전란과 사화의 시련 속에서도 가문의 정기를 지켜냈듯, 광이 일곡의 후손들은 나라가 도탄에 빠지자 망설임 없이 자신을 던졌다. 낡은 종택 일산재(逸山齋)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종회관과 추모비 앞에 모인 후손들과 지역 인사들이 올린 헌화와 추모사는, 바로 그 기개와 애국심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추모식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고, 기록되지 않는 헌신은 잊히기 때문이다. 이번 추모식에서 광산이씨 도문중과 일곡문중, 그리고 지역사회가 한뜻으로 다짐한 후속 과제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열들의 정확한 공적과 가계도를 체계적으로 검증하여 사료적 완성도를 높이는 학술 고증 작업,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일곡 독립로’를 지정하고 추모공원을 조성하여 지역의 대표적 역사문화유산으로 보존·전승하는 노력은 시대적 책무이자 당위다.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 그리고 일곡의 선열들처럼 집안 전체가 대가 끊길 각오로 던진 고결한 희생 위에 서 있음을 깊이 되새긴다.
선조들이 보여준 혈연의 연대와 민족을 향한 뜨거운 애국심은 거친 풍랑을 헤쳐 나가야 할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정표다. 8·15 광복절을 지나며 광이 일곡 마을 독립운동가 6인의 숭고한 넋을 숙연히 기린다. 그들이 남긴 푸른 지조와 애국 정신은 후손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이병준 gn@gwangnam.co.kr
이병준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8.24 (월) 08: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