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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우 시인 |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순간에 내재된, 고대로부터 일상을 적셔온 아시아적인 전통과 영성이다. 집단학살과 탈주 속에서도 아시아의 대자연은 끊임없는 구원의 메시지로 작동한다.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인간을 인간답게 세우는 길은 그 지역이 품은 고유한 전통과 영성에서 온다. 대자연이 생명을 붙드는 정신 그 자체인 까닭이다. 실제로 자연에 그득한 낮은 속삭임들이 아시아 대륙 전체를 치유의 신전으로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시아문학이 가진 그것이 희망의 방식이 아닐까.
이 책은 얼룩진 역사를 섬세하게 따라가면서도 분노와 단절이 아니라, 생명의 고결함과 삶의 위엄을 보여준다. 하여 그 깊이가 남다르다. 학살과 생존, 기억과 상실, 시와 이야기의 힘 등을 주로 다루지만 더 미세한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은 캄보디아의 신화와 민속성이다. 자연과 동식물, 음식 등 일상 속 풍경과 소곤소곤 음성이 경계를 넘어서는 무한한 생명의 결을 보여준다. 몰락과 생존을 가로지르며, 두려움에 맞서며, 삶의 끈을 놓지 않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존재를 향해 큰 질문을 던진다.
바데이 라트너는 크메르 루주 학살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 최초 세대 작가이다. 역사적 비극 속에서도 눈부시게 피어나는 강렬한 디아스포라의 힘은 본질에 관한 많은 것을 제시한다. 프놈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폭력 아래에서 강제노동과 굶주림, 처형 등으로 많은 가족을 잃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남는다. 1981년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망명, 동남아시아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 지역에 머무르며, 집필 활동 중이다. 그는 기억과 언어와 상실과 치유가 서로 감아도는 디아스포라 사유를 펼치고 있다. 여기서 이방인의 감각이 순간과 영원을 연결하는 우주적 생명의 고리임이 저절로 드러난다. 결국 운명을 이해하는 방식은 대자연을 이해하는 데에 있고, 캄보디아 또는 아시아 정신이 품은 이 광대한 생명의 제단에서 치유가 발생하는 것이다.
생명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폭력과 학살은 무섭고 충격적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끌고 가는 문장은 ‘날개’였다. 날개라는 단어는 초월을 향한 마음이기도 하고, 자유를 깃털로 품고 있는 영혼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한함과 높이, 그리고 고결한 생명성을 상징하는 그 날개는 모든 가슴에 잠재되어 있다. 극단적인 물질문명 그리고 생태위기에 갇힌 우리 시대를 보면서 새로운 날개를 꿈꾼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감지하게 된다. 세상은 말할 수 없는 눈물과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들판이었다. 절망 또한 삶의 의미에 관한 메시지가 아닌가.
그리하여 이 작품은 한 지역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아시아적 전통과 영성을 발견하는 좋은 길목이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삶을 사랑하는 초월적 공감을 확보해내는 시선은 매우 아시아적인 가치를 충분한 함유하고 있다. “글이란, 너도 알다시피, (중략) 우리로 하여금 본질적으로는 덧없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게 해주는 거란다. 불의와 상처로 가득 찬 세상을 아름답고 시적인 곳으로 바꾸게도 해주고.” 이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김수우 gn@gwangnam.co.kr
김수우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9.04 (금) 23: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