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로 삶을 마무리한 사람, 김재균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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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시로 삶을 마무리한 사람, 김재균을 기억하며

설정환 시인·광주북구마을자치도시재생센터 대표이사

설정환 대표이사
시인이자 화가였던 김재균 전 국회의원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느덧 만 10년이 되었다. 필자는 그의 국회의원 재임 시절 비서, 비서관, 보좌관으로 함께 일했으며, 그와의 깊은 인연은 필자가 광주전남작가회의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문화북구’라는 슬로건 아래,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스스럼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치인이자 진정한 문화인이었다.

그는 2001년, 35년간 써온 시를 모아 첫 시집 ‘달빛 아래 찔레꽃’을 펴냈다. 당시 시에 대해 아무런 안목도 없던 필자에게 정성스럽게 출력한 시 몇 편을 건네며 “한 번 읽어 봐 주게” 하던 2007년 겨울의 첫 만남이 지금도 생생하다. 담담한 미소와 함께 시를 내밀던 그의 손길은 여전히 따뜻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무엇보다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정확히 10년 전,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그는 병실로 나를 불렀다. 조용한 목소리로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조문 오시는 분들께 시집 한 권씩 선물하고 싶네”라며 유언 같은 부탁을 전했다. 이미 두 번째 시집 ‘장수풍뎅이를 만나다’를 낸 그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집 ‘무등을 그리며’의 원고를 내게 맡겼다. 그 유고 시집은 불과 일주일 만에 편집과 인쇄를 마쳐, 문상객들의 손에 그의 마지막 인사로 전해졌다. 필자에게도 처음 경험하는 방식의 이별이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로 삶을 정리했고, 문화는 구호가 아니라 살아내는 일이라는 것을 삶 전체로 보여주었다.

김재균 전 의원은 문화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북구청장 재임 시절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 2003년 전국 최초로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했고, 이듬해 이를 제도화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같은 해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조례’를 제정해 주민자치 정책을 제도적으로 선도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문화정책의 정수는 2000년 9월 개관한 ‘일곡도서관’에 담겨 있다.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지역에 건립된 광주 최초의 생활권 공공도서관이자, 미술작품 전시가 가능한 갤러리를 함께 구성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도서관을 걸어서 5~10분 안에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오늘날 흔히 말하는 ‘슬세권’(슬리퍼 신고 생활 가능한 생활권)의 개념을 이미 실현한 선구적 사례였다. 그러나 개관 25주년을 맞은 현재, 일곡도서관은 여러 차례 리모델링에도 불구하고 광주를 대표하는 공공도서관의 위상을 점차 잃고 있다. 특히 일곡갤러리는 북구 공립도서관 6곳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시 운영은 대부분 사서들이 병행해 왔고, 예산도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일곡갤러리 전시를 외면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근 삼각동의 ‘남도향토음식박물관’ 기획전시실도 마찬가지다. 2007년 개관 이후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 없이 운영되고 있으며, 북구청 갤러리, 북구평생학습관 자미갤러리, 풍물갤러리, 금봉미술관, 북구문화센터 오픈갤러리 등 북구 관내 주요 전시공간 대부분이 전문 인력 없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명예관장’과 같은 형태로 외부 전문가를 적극 영입해 전시기획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제고하는 자구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우리 지역에서 주목할 만한 긍정적 사례가 있다. 북구 운암동에 위치한 북광주세무서(서장 노현탁)는 신청사 준공과 함께 1층 공간을 ‘갤러리&409’로 조성했다. 이 공간에는 오치동에서 활동 중인 ‘해바라기 작가’ 박유자 화가가 명예관장으로 위촉돼 활동 중이다.

다소 협소한 공간임에도 공공청사에 갤러리를 조성하고, 예술인을 주도적으로 참여시킨 이번 사례는 김재균 전 의원이 북구청장 시절 추진했던 ‘공공시설의 문화화’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행정시설의 품격을 높이고, 예술인에게는 창작의 장을, 주민에게는 일상 속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한 이러한 시도는 북구 문화정책이 지향해온 방향을 잘 보여준다.

앞으로 박 명예관장이 이끄는 ‘갤러리&409’가 지역 예술인들이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이고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이자 주민과 예술이 만나는 일상 속 문화장소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예술과 행정이 조화를 이루는 이 실험이 지역문화의 품격을 높이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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