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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
서양화가
얼마 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을 관람하였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22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 미술전시회 중 최다 관람기록을 달성한 후 장소를 부산시립미술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화가 이중섭은 1916년 4월10일 태어났으니 2016년인 올해가 이중섭이 탄생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로지 그림밖에 모르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화가가 어떤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죽어 갔는지 전시회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중섭은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 고등보통학교에서 민족의식을 깨우치고 스승인 임용련에게 미술의 기초인 소묘의 중요성을 배웠다. 오산학교시절 유난히 소에 관심이 많아 하루 종일 소를 관찰하다 소도둑으로 몰리기도 했었다. 그의 대표작인 소 그림은 이중섭 자신이기도하지만 우리 민족의 모습이기도 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전위적 분위기가 강했던 분카학원을 다니며 화가로서의 길을 가게 되고 학원에서 만났던 일본 여인 야마모토 마사코가 나중에 원산까지 찾아와 결혼하게 된다.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인해 남과 북으로 분단되며 일어난 민족의 비극 6·25전쟁은 이중섭 생애 비극의 시작이었다. 부산, 제주도, 통영을 전전하며 극심한 가난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고 혼자 화가로서 삶을 이어갔다. 1956년 서울 성베드로 병원에서 정신분열증세와 영양실조, 간염 등의 병으로 곁에서 지켜주는 이도 없이 죽어갔지만 화가 이중섭은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화가로 남아있다.
미술평론가 김인환은 ‘공간지’에서 ‘이중섭의 작품은 작가의 격렬함과 집념, 우직함과 자연스러움, 야만성, 고뇌와 연민, 환상과 방랑성, 갈망과 광기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기술했다. 살아생전에 가장 비참하고 불우했던 화가였지만 사후에 신화가 된 화가 이중섭은 그가 남긴 작품으로 이 시대 우리들과 만나고 있다.
이중섭과 함께 요즘 화재가 되고 있는 화가가 수화 김환기(1913~1973)이다. 한국적인 서정성과 모더니즘을 결합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화가 김환기. 그의 작품인 노란색 전면점화 ‘12-V-70#172’가 홍콩에서 열린 경매에서 역대 최고가인 63억2626만원에 낙찰됐다. 이로서 김환기의 작품이 우리나라 그림 경매가에서 1위에서 5위까지를 차지하게 됐다.
수화 김환기는 우리 고장인 신안 안좌도에서 태어났다. 일본 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에서 미술공부를 한 후 1937년 고향으로 돌아와 안좌도의 서정미에 매료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암청색의 바다와 수많은 학들은 이 후 그의 작품에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홍익대 교수로 재직하다 파리생활 후 다시 귀국하여 열정적인 작업을 했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명예상을 수상한다. 이후 서울에서의 안정된 생활과 미술계에서의 지위를 버리고 뉴욕행을 결행한 수화는 그곳에서 그의 작품의 새로운 세계인 점화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