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문화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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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문화산책]문화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곽규호
광주문화재단 시민문화관광팀장

“난 올해 2편의 소설을 썼어.”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한 그 친구는 작가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다. 20년 넘게 회사원으로 살아온 그런 친구다. 고교 동창인 이 친구가 2~3년 전부터 가끔 전화해서 클래식 감상 모임을 소개해달라거나, 사진 동호회를 소개해 달라더니, 올해는 문학 강좌를 듣고 싶다고 해 때마침 신입 수강생을 모집하던 모 문학아카데미를 소개해줬다. 클래식 감상 동아리를 소개해 준 뒤에 들은 소식이 한두 번 나가고 그만 둔 전력이 있는지라 이번에도 생각도 않고 있었던 내게 충격적인 소식 겸 자기자랑을 전하다니.

“연말도 다가오고 하니 얼굴 좀 보자, 식사 한 번 하자.” 해서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과정이 쉽지는 않았더란다. 2~3년 선배 수강생들의 무시와 텃새가 적잖이 힘들게 했다는 것. 이제 1년도 안 된 신참이 소설은 무슨 소설, 그게 무슨 글이냐는 따위다. 그 난관을 뚫고 그는 말하자면 소설을 썼다는데, 작품의 수준을 떠나 이 이야기부터가 소설 같지 않은가.

2003년 광주는 문화수도·문화 메카라는, 당시 대통령이 광주를 그렇게 만들겠다고 한 약속에 들떠 있었다. 이런 지역 정서와 무관하게 서울이나 다른 도시의 문화 전문가들은 시큰둥했던 게 사실이다.

그 시절 모 방송국이 ‘광주문화수도가 가능한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하는 토론회를 마련한 적이 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을 비롯해 전국의 유명한 전문가들이 출연했다. 도시계획을 전공한 모 교수는 “인구 150만명도 되지 않는 광주를 놓고 무슨 문화수도냐, 최소 250만명은 되어야 한다.”며 절대로 광주는 문화도시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나는 물론이고 많은 지역민들, 우리 문화계는 많이 서운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게 문화도시일까? 과연 우리가 사는 이곳에 정부 예산을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쏟아 붓는다면 문화도시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스럽기는 했다.

‘도시 전체에 예술적 분위기가 흐르는 멋진 도시가 문화도시다’, ‘문화(예술)가 삶의 중심, 행정의 중심에 놓이는 도시’, ‘사람이 존중받는 사람 중심 도시’, ‘거리 곳곳에서 음악이 흐르고 예술인들이 작업하기 좋고, 살기 좋은 도시’ 등 여러 이야기들이 제시됐다.

그로부터 15년가량이 흘렀다. 문화수도론은 이제 자취를 감췄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용어는 정리됐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오랜 진통 끝에 2년 전 공식 개관됐다. 그곳에서는 광주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좋은 프로그램이 계속 펼쳐지고 있다.

올해 유난히 주말을 바쁘게 보냈다. 주말마다 금남로로, 민주광장으로 나가 프린지페스티벌을 진행했다. 행사가 없는 날이면 운림동 전통문화관으로, 충효동으로, 소쇄원으로, 혹은 미술관이나 비엔날레 행사장으로 나갔다. 주말 금남로에는 특히 시민이 많이 찾아온다. 많을 때는 수만명이 행사현장에 몰려들기도 한다. 아트피크닉이 열리고 있는 중외공원에도 주말이면 가족끼리 놀러 나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사실 광주가 문화도시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이런 저런 축제 현장, 공연현장, 미술관에 시민들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어서도 아니다. 그림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하지만 월급쟁이로만 살아온 나의 친구가 소설을 2편이나 만들어 냈다면, 그런 사람들이 더 늘어난다면 그때 광주는 진정 문화도시로 불릴만하다고 본다. 시민들이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에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시민들의 도시. 그런 도시라면 충분히 문화도시라고 자랑할 만하다. 문화가 사람의 것이듯 문화도시 역시 사람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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