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예술가들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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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문화산책]예술가들의 크리스마스

백홍승 광주시립교향악단 운영실장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특별히 의미가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세상 가장 낮은 곳 마굿간으로 임하셨다는 것과 그것이 곧 지구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등이 실현되고 구원을 기대하게 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돌아보면 2017년은 시립예술단체 전체에게 수모와 시련의 해였다.

상반기 내내 연일 방송에서는 시립 극단뿐만 아니라 광주시립예술단 전체가 예산 빼돌리기 등의 불법행위 의혹이 있다는 집중보도가 계속 됐고 결국 이것이 본청의 감사와 수사기관의 수사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개인적인 불법행위가 있었으면 그 당사자 개인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고 각 단체와 관련된 행정 행위들에 문제가 있었다면 거기에 합당한 행정조치가 따라야 하는 것은 만인에게 평등한 법질서로서 마땅히 지켜져야 할 것이다. 논란이 된 예술단체나 개인을 두둔하고자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단체에서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가는 증거들이 있어 보이지만 나머지 사안들은 명확한 증거나 그 대상들조차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립예술단 모두가 싸잡아서 매도됐다는 점에서 매우 부당하다. 8개 시립예술단체와 300명의 시립예술단원이 전부 다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 어느 날 갑자기 시립예술단 단원들과 관련 공무원들은 모두 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시립예술단의 예산이나 빼돌리고 있고 뒷돈을 받고 근무는 태만히 하는 등 온갖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는 범죄자 집단이 되고 만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방송과 언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고 무서운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마치 작심한 듯 매일 시리즈로 터지는 집중 보도와 연이어 실시되는 감사와 수사기관의 수사를 속절없이 지켜보면서 우리들은 깊은 무력감과 공포 그리고 수치심을 느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야말로 말장난에 불과하다. 고대 이래 변함없는 사실로서 예술가들은 언제나 무력했고 오히려 권력의 선전과 치장의 도구로서 자주 이용됐던 것은 세계사의 팩트로서 남아있다. 예술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예술적 자존심을 지키고 주변인들에게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인데 지금 그 마지막 자존심은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됐다. 이미 방송과 언론보도들을 통해 사실상의 사회적 명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는데 나중에 사실이 아닌 부분들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들 무슨 소용이겠으며 누군가 책임을 지겠다고 한들 무슨 수로 어떻게 책임을 진단 말인가?

어차피 힘 있는 행정가들과 정치인들, 시민단체의 목적이 시립예술단의 전면적인 개혁이고 그 목적에 진정성이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먼저 시립예술단원들의 입장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각 예술단의 정확한 실상과 실태파악이 우선돼야 할 것이며 아울러서 처우와 근무 조건 등을 개선하는 것도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고 본다. 차라리 해줄 수 있는 것을 해주고 그 대신 똑바로 하라고 요구한다면 누구든지 납득할 일이다. 세상 어떤 명제에나 양면성은 있을 것이다. 밖에서 시립예술단원들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반대로 이쪽에서도 할 말들이 너무 많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불합리한 행정규제, 생활하기 어려운 수준의 급여 등 제각각 예술적 장르와 특성이 판이하게 다른 무려 8개 예술 단체의 운영 조례를 수 십년 동안 일률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툭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진정 시립예술단체들을 개혁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상부의 지시로 TF팀 몇 개를 만들고 몇몇 전문가들이 모여 숱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보고서를 만들어 올린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절대로 아닐뿐더러 무책임한 발상이다. 필자는 이미 수차례 그 TF팀의 일원으로서 다 해봤던 일들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 할 수 있으며 어차피 이 지경까지 왔다면 차라리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시점에 온 것 이라고 본다.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겪고 느끼고 고민해야했던 수없이 많은 문제 사례들을 들기에는 지면이 턱 없이 부족해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겠다. 다만 우리 지역의 가련한 예술가들이 이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부디 끝까지 예술적 자존심과 소망을 내려놓지 말고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를 기원할 뿐이다.

잔다르크의 재판정에서 재판장이었던 코숑 주교는 피고가 너무나 하찮고 무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방청객에게 보여주고 잔다르크에게는 수치와 모욕을 줄 목적으로 주기도문을 암송해보라고 요구한다. 그때 잔다르크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나의 주기도문을 들을 만큼 독실한 신자인지 먼저 신앙고백을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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