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전근대, 근대, 탈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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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전근대, 근대, 탈근대

박순원(시인, 광주대 교수)

지난 해 말, 영국사를 연구하시는 이영석 선생님이 ‘삶으로서의 역사’를 출간하셨다. 정년을 1년 남짓 앞두고, 역사 연구자로서 살아온 삶을 반추하고 학문적 역정을 돌아보는 저서이다. ‘역사’와 ‘서양’이라는 두 한자 성어의 기원을 찾으면서 자신의 생애사와 탐구의 여정을 찾아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다. 저자는 후기에서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탐구의 결과를 주로 논문이나 연구서로 발표했기 때문에 좁은 학계의 몇몇 동료 연구자들만이 역사서술의 주된 소비가일 뿐이라는 점이 아쉽고, 스스로 고민하고 방향전환하고 몰두했던 연구 대상과 주제와 열망을 일반 독자층에게도 알리는 작업도 소중하다는 취지에서 저술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책머리에 재미있는 대목이 있어 옮겨본다. “1953년생인 나는 궁벽한 산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유년 속의 생활세계는 전근대적인 풍경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 사석에서 농담 삼아 스스로 전근대, 근대, 탈근대를 가로지르며 살아왔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더욱이 한국사회 자체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행과정에서 반세기 이상 심각한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나는 이 혼란의 와중에서 역사연구를 계속했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생애사이자 한 역사가의 연구 궤적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문 초입에,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예를 들어 전근대의 풍경을 보여준다. 1960년대 중엽 궁벽한 산촌의 60명 남짓되던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담임선생님이 처음 이야기를 꺼내시고, 모두 다 같이 좋아서 날뛰고, 그 다음날부터 학교생활 자체가 여행 계획을 중심으로 짜여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행 계획이라는 것이 좀 우습다. 싸리나무 빗자루를 만들어 여행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끝낸 후 곧바로 마을 뒷산에 올라 싸리나무를 베었다. 학교 운동장 빈터에 싸리나무 가지를 널어놓고 햇볕에 말린 후에 한데 묶어 빗자루를 만들었다. 인근 면소재지에 장이 열리면 교대로 나가 빗자루를 팔았다. 수입이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시골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서로 장터에 나가려고 열심이었다.”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과연 수학여행을 떠난다. 하루 종일 산길을 걷는 도보 여행이었다. 도시락을 두 개를 까먹으며 몇 봉우리의 산을 넘어 정읍 칠보 수력발전소에 이르렀고, 이튿날은 버스를 타고 인근 높은 산지에 펼쳐진 인공호수를 구경하고 공사감독의 배려로 현장에서 시멘트며 골재를 운반하는 케이블카에 올라타 호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보는 행운도 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였다. 때마침 쏟아진 초여름 장맛비로 도로가 막혀 공사판을 떠나지 못하고 다시 길이 뚫릴 때까지 사흘을 더 머물러, 예상치 못한 비용 때문에 얼마씩 돈을 더 걷고 일부는 담임선생님이 부담하셨다는 것이다.

저자는 “산업화 초기 새로운 사회변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아직 전통적 모습을 간직한 농촌 풍경이나, 또는 궁핍한 농민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자료로 여겨질지 모른다.”고 스스로의 기억을 평가하고 있다. 70년대 중소도시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에 기계공고가 있었는데, 교복이나 교련복 왼쪽 어깨에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고 써 붙였던 마크가 지금도 생생하다. 근대의 규율과 통제가 엄격하던 시절이었다.

독일의 철학자 짐멜(G. Simmel)의 『돈의 철학』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아직 화폐경제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자연적 조건하에서, 그리고 농업생산물이 상품으로 등장하지 않는 경우에는, 한 개인의 절대적인 궁핍이라는 것이 드물다. 최근에도 러시아에서는 화폐경제가 침투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개인적인 궁핍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에서 동정이나 연민은 돈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결핍하고 있는 음식이나 의류를 제공하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우리의 예전 농촌 풍경을 상상했다. 이영석 선생님이 전해준 에피소드는 나의 상상이 구체화된 장면이다. 나는 많이 웃었고, 또 서글펐다.

배고파 죽겠다던 시대를 지나, 힘들어 죽겠다던 시대를 지나, 바빠서 죽겠다던 시대를 지나, 외로워 죽겠다는 시대에 도달하였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우리 스스로가 만든 현란한 시대를 정신없이 살아가는 수밖에…. 이영석 선생님도 늘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며, 매일같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다른 사람이 올린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며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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