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우리는, 토요일 광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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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문화산책]우리는, 토요일 광장으로 간다

강 경 호
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내게 촛불의 기억은 일 년에 몇 번씩 가족의 생일날 생일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밝히고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불렀던 것들이다. 아니 내게는 촛불에 관한 고약한 기억이 하나 더 있다. 군시절 군단포대 이사종계였던 나는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창고에 촛불을 켜고 들어간 적이 있다. 지하벙커를 창고로 쓰고 있었는데 동계훈련 갔다 온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이사종창고에 촛불을 들고 들어가니 아직 이등병 계급장을 못 뗀 졸병이 목매단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참으로 몹쓸 기억 하나가 내게 촛불에 대한 상처, 또는 알레르기를 갖게 했다. 그런 까닭에 최근까지 내게 ‘촛불’의 상징은 ‘죽음’이었다.

우리 현대사에서 촛불의 의미가 새롭게 달라진 역사는 길지 않다. 내 기억으로는 미군 탱크에 깔려죽은 효선·미선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촛불이 나타났던 것 같다. 이때 촛불의 의미는 미군에 대한 항의와 분노의 표시였다. 그렇지만 그 배경에는 여전히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후 촛불은 민심을 드러내는 기표가 됐다. 소고기수입 반대와 각종 정치적 사건에 대한 국민의 마음을 담아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의미의 ‘촛불’의 문학적 상징인 ‘눈물’, ‘슬픔’, ‘희생’ 등의 의미를 초월하여 ‘희망’, ‘열정’, ‘정의’, ‘자유’,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기표로 진화하고 있다.

방안에서 어둠을 밝히던 촛불이 이제 광장으로 나왔다. 바람에 꺼지던 나약하고 힘없는 촛불이 아니라 태풍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됐다.

지난 한 해는 참으로 시끄러운 해였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사태’에 대한 민심이 폭발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우리 광주는 역사적으로 ‘광주학생의거’,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등 우리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역사를 견인했다.

이번의 국정농단사건에도 광주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장 먼저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켰다. 광주시민들이 손에 쥔 촛불은 서울과 여느 도시에서 밝힌 촛불과는 질감이 다르다. 흔히 민주의 성지라고 불리는 옛 도청 앞과 금남로가 어디인가. 해방 1주년을 맞아 중앙초등학교에서 기념식을 하고 있을 때 금남로 위로 미군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없어 시위하던 광주시민들이 목소리를 냈던 곳이다. 4·19혁명과 5·18민중항쟁, 그리고 수많은 비민주적인 국가권력의 폭력에 저항하며 분노를 드러냈던 곳이 옛 도청 앞이고 금남로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분수령에서 광장에 나와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외치는 광주의 촛불은 어느 누구의 촛불보다도 진정성이 있다 하겠다.

그 동안 정의와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유린당할 때마다 촛불을 켤 줄 알았던 광주시민들의 의식 속에서는 80년 오월 광주의 상처를 생각할 때마다 전두환이 떠오르고, 전두환이 창당했던 민주정의당이 떠오르고, 뒤를 이은 한나라당과 이름만 바꿔진 새누리당이 떠올랐다. 이러한 정당에서 군부독재의 폭력적인 DNA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지인들은 왜 민주당 몰표냐고 묻기도 했지만, 호남사람들의 핏속에 흐르는 정의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특별한 지역감정 때문이 아니었음을 누가 알겠는가.

새누리당이 분열되고 있는 지금, 광주에서 타오르는 촛불은 앞에서 밝힌 그것들을 뛰어넘어, ‘박근혜·최순실’을 뛰어넘어, 모든 적폐를 뛰어넘어, 국정교과서를 뛰어넘어, 사드를 뛰어넘어, 헬로조선과 금수저를 뛰어넘어, 세월호를 뛰어넘어, 색깔론을 뛰어넘어, 마침내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가 돼, 광장에 나오지 않은 소리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빛이 되고 온기가 되고, 서로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촛불이 아닐 수 없다.

최루탄이 난무하고 피를 부르던 폭력과 야만의 시대를 보낸 것은 촛불이다. ‘촛불’이 이렇듯 폭발적인 힘을 지닌 것은 촛불이 ‘문화’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촛불은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다. 이제 촛불 앞에 서면 분노의 목소리보다도, 위안과 격려와 사랑의 손길이 되고 마는 것은 분명 촛불이 문화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노래 부르고, 시를 낭송하고, 춤을 추고, 토론을 하고, 촛불문화가 이제는 지난 시절 광장의 어둠과 우울을 청산하고 새로운 희망의 등불이 돼주고 있다. 봄이 멀지 않다. 촛불이 봄을 불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봄을 맞이하기 위해 광주시민은 매주 토요일 저녁 5·18광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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