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병아리 떼 쫑쫑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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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문화산책]병아리 떼 쫑쫑쫑

박순원
시인· 광주대 교수

정유년, 닭의 해가 밝았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닭의 해는 조류독감으로 인해 수천 마리의 닭을 생매장하면서 시작됐다. 구제역, 조류독감 등 요 근래 겨울마다 반복되는 가축들의 전염병이 올해에도 비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년 겨울 우리는 수백만, 수천만의 생명을 산 채로 땅속에 묻고 봄이 오면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 해를 살았다. 나는 지난해 국립생태원에서 발간한 ‘MOOK ECO PLUS 1호’에 닭에 관한 시 ‘병아리 떼 쫑쫑쫑’과 산문 ‘닭, 백숙, 통닭’을 발표했다. 닭의 해를 맞아 함께 읽어보고자 한다.

“전화 한 통화에 닭 한 마리가 튀겨져 내 눈앞에 와 있다. 이 닭은 33일을 살다 죽은 병아리다. 닭처럼 보이지만 고도비만 병아리다. 부화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서 태어나 위탁 양계로 길러진 병아리다. 암평아리다. 가슴살이 없는 수컷은 태어나자마자 이미 죽었다. 브로일러 사육방식으로 자라난 암평아리다. 가슴살 다리 날개를 위해 눈동자와 창자와 허파와 간과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 태어난 암평아리다. 수평아리보다 한 달 남짓 더 산 암평아리다. 왜 태어났는지 곰곰 생각해 볼 새도 없이 컨테이너벨트를 따라 털이 뽑히고 톡톡 머리가 잘리고 발이 제거되고 내장을 발라내고 핏물을 닦아내고 위생적으로 깨끗하게 처리된 암평아리다. 털이 뽑힌 뽀얀 병아리 시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컨테이너벨트를 따라 돌면서 머리가 톡톡 잘리는 장면, 치맥이 되기까지 수요공급법칙 극락왕생”(병아리 떼 쫑쫑쫑)

“국민학교 다닐 때, 방학이 되면 늘 할머니 댁에 가서 짧게는 일주일 길면 보름 정도 지내다 왔다. 할머니 댁에는 소도 있었고, 뒷곁 귀퉁이 돼지우리에 돼지도 한 마리 있었고, 닭도 있었다. 닭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네를 배회했다. 벌레도 잡아먹고 흘린 곡식도 주워 먹고 푸드득푸드득 홰를 쳐보기도 하고 한가롭게 놀다가 저녁때면 일제히 마당에 모였다. 할머니께서 됫박에 곡식 몇 움큼을 가지고 나오셔서 ‘구구구 구구구구’ 닭을 부르면 잰걸음으로 모여들어 부지런히 콕콕 찍어먹었다. 적을 때는 한 이삽십 마리, 많을 때는 칠팔십 마리가 되었다. 구십 마리 가까이 된 적도 있었는데 마당이 꽉 찼다. 나도 옆에 서서 ‘구구구 구구구구’ 따라해 보기도 하고, 곡식을 한 움큼 집어 뿌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꼭 우리 닭만 모였다. 가끔 다른 집 닭이 가장자리에서 곡식 몇 알이라도 쪼아보려고 쭈뼛거리고 있으면 꼭 우리 닭들이 쫓아버렸다.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윽박지르는데 아주 기세가 등등했다. 할머니는 물론 우리 닭인지 아닌지 한눈에 알아보셨다. 우리가 돌아가기 전날에는 그중 두어 마리를 잡아 삶아주셨다. 할아버지께서 나보고 닭을 잡아보라고 하셔서 한나절을 닭 꽁무니를 따라다닌 적이 있었다. 어린 나따위에 잡힐 닭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다가 성큼성큼 걸어가서 한손에 한 마리씩 잡아오셨다. 닭들도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는 듯, 별 저항 없이 붙들려왔다. 그때 마당에 있던 모든 닭들은 다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닭, 백숙, 통닭)

예전의 닭이 ‘가축’이라면, 요즘의 닭은 ‘공산품’이다. 예전에는 닭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엄마 아빠가 있었고 형제가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그 모든 닭의 모양과 성격을 알고 계셨다. 하루 종일 제멋대로 돌아다니던 닭들을 한 군데로 모으고, 모이를 주고, 닭장에 넣고 재우셨다. 함부로 아무데나 헤집고 다니면 야단을 치기도 하고, 쫓아내기도 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잡아먹었다. 닭고기와 계란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 우리는, 세계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우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닭고기와 계란을 쉽고 편하게 많이 먹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먹는 닭의 알과 살은 햇볕을 한번도 보지 못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스트레스 가득한 삶이 만들어낸 것이다. 예전의 닭도 지금의 닭도 우리 인간에게 잡아먹힌다는 점에서는 똑같지만, 닭에게도 ‘사는 동안’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정유년, ‘닭의 해’라고 할 때의 ‘닭’은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교감하는 동물이었다. 수탉은 위풍당당 자신감이 넘치고 어슬렁거리고 다른 수탉에게 시비를 걸고, 암탉은 따뜻한 알을 낳고 품고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들을 기르고, 병아리 떼는 쫑쫑쫑 몰려다니며 자신의 앞날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면서 하루하루를 즐기며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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