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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을 맞이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내일이면 입춘이다.
입춘의 문턱에서 여전히 바람은 매섭지만, 지난 호에 끝내지 못한 러시아 연주기행의 감동을 나눠 보려한다.
나는 러시아에서 총 4번의 연주를 했다. 그 중 첫 연주는 로스토프극장에서다. 로스토프는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였고, 국악기로는 처음으로 선보인 연주였던 만큼 객석에는 호기심에 가득 찬 러시아인들과 고려인들이 가득 차 있었다. 마음씨 좋게 생긴 사회자가 나를 그들에게 소개 했을 때 난 벅찬 가슴을 안고 무대로 나갔다.
‘아! 드디어 거문고를 선보이는구나’ 안드레이의 지휘봉이 올라갔다. 로스토프교향악단원들의 힘찬 연주와 함께 내 연주는 시작 됐고 정말이지 어떻게 연주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땀에 흠뻑 젖어 협연을 끝냈을 때, 관객들의 표정과 단원들의 표정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 졌다. 역시 음악은 장르를 떠나서 전 세계 공용어이다.
통했다! 숨죽이며 거문고소리를 들으려는 그들 앞에서 난 희열을 느꼈다.
로스토프극장에서의 연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러시아사람들의 눈에 비친 거문고와 한복은 매우 아름다웠고, 방석 위에 앉아 연주하는 모습 또한 그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갔다. 공연 후 나와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객들의 모습에서, 난 정말 거문고연주자가 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에 젖었다.
다음날은 크라스노다르라는 도시로 이동해 두 번째 협연을 했다. 거리는 깨끗하며 곳곳에 공원이 잘 형성돼 있었다. 크라스노다르극장에 들어선 순간 건물 벽 전체에는 그 곳에 상주하고 있는 민속악단의 사진과 러시아의 대통령인 푸틴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극장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대기실로 이동했다. 크라스노다르극장은 솔리스트를 위해 최대한의 배려를 해주는 곳이었다. 솔리스트를 위한 대기실의 규모는 물론이고 직원 한 분이 옆에서 모든 잡다한 일들까지 해주었다. 예를 들자면, 악기와 의상을 들어주고 식사를 직접 대기실로 가져다주며, 솔리스트가 무대에 서기 전까지 모든 일들을 옆에서 세심하게 보살펴주는 일 등등이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서 이 또한 감동이었다. 예술가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러시아 여정 4일째, ‘라흐마니노프음악원초청으로 거문고 독주회’가 있는 날이다.
학교의 민속음악과 학장님의 초청으로 학교 강당에서 거문고 독주회를 가졌는데 학생들과 교수님들이 모두 보러 와 주었다.
무대의 울림 또한 마이크를 대지 않아도 강당의 끝부분 까지 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게 설계돼 있었다. 한 시간 가량 거문고 연주를 했을까? 학생들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했다. 그들의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보았을 때 콘서바토리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연주 후 예정되지 않았던 일이 생겼다. 이 곳 학생들이 거문고라는 악기를 처음 접해보고는 너무도 많은 질문을 나에게 던진 것이다. 학생들 중에는 러시아 민속악기인 발랄라이카 전공생들이 있었는데 연주법이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질문의 내용은 악기의 재료와 술대, 골무의 쓰임, 발현하는 방법 등등 이었다. 그리고 방석을 깔고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연주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했었나 보다. 어떤 방법으로 앉았는지 물어오는 학생이 있었다. 내가 방법을 알려 줬으나 문화의 차이인지 그렇게 앉질 못했다. 지금도 콘서바토리학생들의 열정은 잊을 수가 없다.
러시아 여정 8일째 되는 날은 ‘고려인들을 위한 밤’ 이다.
한국 현대음악 작곡가인 김현옥의 ’아리랑’을 로스토프교향악단과 협연을 했다. 로스토프는 고려인 2, 3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고려인연합회 회장님, 고려신문사 회장님 등 여러 분들이 손주들 손을 이끌고 연주를 보러왔다. 연주 도중 객석에 앉아 있는 고려인 할머니와 눈이 마주 쳤는데, 그 분은 아리랑의 선율을 들으며 고향생각을 하셨는지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갑자기 내 맘도 뭉클거리며 가슴 속에 뜨거운 그 무엇이 타올랐다. 이번 러시아연주여행은 너무도 많은 감동과 열정, 그리고 아직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여행이었다. 난 여전히 정열적인 거문고 연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