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더러운 잠’에 대한 마녀사냥과 미술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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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더러운 잠’에 대한 마녀사냥과 미술의 이해

강경호
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마네의 올랭피아는 1863년에 그렸다가 2년 후에 전시됐는데 인상주의의 첫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때 살롱전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작품은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음란하고 퇴폐적이어서 부르주아들의 성적 취향을 잘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의 ‘올랭피아’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너스는 신적 존재이고 올랭피아는 현실 속의 실제 인물인 까닭이다.

마네는 서양미술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신적 존재를 통해 음란함과 퇴폐를 즐긴 당시 사회의 이중성에 대해 고발하고자 ‘올랭피아’를 그렸다. 당시로서는 현실 속의 인물을 등장시켜 비도덕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신화나 역사를 재현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네는 신화나 역사의 모방보다도 자신만의 창조적인 세계를 담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런데 비평가들은 마네의 정직한 생각, 새로운 생각을 이해하지도, 용납하지도 않았다.

지난 1월 20일, 국회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표현의 자유를 향한 예술가들의 풍자연대’가 주최한 ‘곧, BYE전’이 열렸다. 여기에 전시된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등장시킨 이구영의 ‘더러운 잠’이 새누리당과 보수단체에 의해 비판을 받고 전시 중에 무자비하게 훼손된 사건이 일어났다.

새누리당은 “풍자를 가장한 인격모독과 질 낮은 성희롱이 난무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인격살인 행위에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이 전시회를 주선한 표창원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표창원 의원에게 당직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국민적 반발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일어난 이 사건은 미술작품에 대한 정치적인 심판이 가해졌다.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몇 해 전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심판이 내려졌었다. 이렇듯 미술작품에 대해 정치적인 공세로 마녀사냥하듯이 단죄하는 우리 사회의 풍토가 한국미술발전에 걸림돌이 됨을 나는 지적하고 싶다. 기득권 세력들이 음란하고 외설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마네의 ‘올랭피아’가 오늘날 미술교과서에까지 실리고 근대회화를 여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을 상기시킬 때 정치성을 곁들인 도덕적 잣대만으로만 평가되는 것이 미술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하여 나는 ‘더러운 잠’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분명히 논란의 소지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도의 기득권자인 남성들이 여성의 몸은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성의 몸은 벗겨도 되고 남성의 성기를 드러내는 작품에 대해서는 죄악시하는 우리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위안부 문제를 두고 한국 남성들이 일본 여성들을 강간하자는 말과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괜히 일본 여성들을 피해자로 만드는 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견의 한편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이번 ‘더러운 잠’이 논란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9금’이라는 단서를 달고 영화에서 섹스장면을 표현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더러운 잠’은 섹스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부르주아들의 비호를 받으며 몸을 파는 프랑스 창녀인 올랭피아에 빗대어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것은 예술작품으로써 정확한 비유라고 하기 힘들다. 올랭피아는 신을 빙자하여 여성의 몸을 탐미하는 관음증사회를 풍자했다. 그런데 ‘더러운 잠’은 우리 사회의 관음증이나 도덕성을 드러냈다고 하기에는 비유가 마땅치 않은 면이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한국미술계가 안고 가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더러운 잠’을 단죄했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 정치적인 해석보다도, 도덕성과 윤리성으로만 따질 것이 아닌 까닭에 미술계의 전문가들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물론 논의는 전무한 채 마녀사냥식으로 순식간에 미술작품을 평가했다는데, 두렵다. 이러한 일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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