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귀명창
검색 입력폼
문화산책

[문화산책]귀명창

곽규호
광주문화재단 시민문화관광팀장

문화재단에 근무하면서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문화재단이란 데서 하는 일이 뭐냐는 것이다. 광주광가 광주문화재단을 창립한 2011년부터 근무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에게는 어쩌면 조금은 생소한 조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창립 7년째를 맞은 지금까지도 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다. 홍보팀을 2년이나 맡았던 필자로서는 자괴감과 당혹감이 들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광주문화재단은 2011년 광주를 문화의 숲으로 가꾸는 농부가 되겠다고 출발했다. 일하는 내용을 자세히 말하자면 첫째 예술인의 창작과 예술 활동 지원, 시민의 문화예술 향수 지원, 문화예술축제 개최, 문화예술교육, 빛고을시민문화관·전통문화관 등 문화시설 운영 등을 주된 임무로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해도 적지 않은 일을 하는 기관이지만 광주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조례(3조 사업)에는 무려 10가지 이상의 사업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여기에 2014년 말부터는 유네스코창의도시 네트워크에 미디어아트시티로 가입되면서 미디어아트 관련 업무의 비중도 크게 늘었다.

이 모두를 한마디로 줄여 광주를 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해 광주시가 만든 민간 조직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사실 문화재단이 하는 일은 시민을 보다 더 문화와 예술에 가깝게 해서 문화시민을 길러내고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 국악인의 연주를 듣다가 귀명창이 최고란 이야기를 들었다. 자주 듣는 말이지만 머리를 얻어맞은듯한 깨달음을 얻었다. 귀명창이 있어야 명창이 있다는 말처럼 잘 듣는 이들이 우리 문화도시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국악 공연 현장에 가보면 추임새를 가르친다. 소리꾼이나 기악 연주자들의 흥을 돋워주는 역할을 하는 관중들의 역할을 추임새라고 한다. ‘얼쑤’ ‘지화자’ ‘좋다’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추임새를 잘 넣는 사람을 귀명창이라고 한다. 귀명창이 아무 때나 추임새를 넣어서는 귀명창이 되지 못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판소리를 할 줄은 모르더라도 듣고 감상하는 수준이 명창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뜻을 갖는다. 엄청나게 연구하고 들어야 귀명창의 수준에 오를 수 있다. 적극적으로 찾아 듣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판소리의 전통에 대한 이해와 식별력을 지닌 청중이란다. 사설과 성음, 장단을 명확히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소리꾼이 이면을 제대로 그리고 있는지를 지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귀명창 소리를 듣는다. 듣는 것도 그만큼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광주를 대상으로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이 시작된 지 14~15년이 된다. 핵심 시설인 아시아문화전당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지난 해 문을 연 이래 점점 발전하고 있다.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에 그동안 투입된 예산이 수천억원이라고도 한다. 앞으로도 더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하지만 문화도시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겨우 몇천억원, 십수년만에 완성될 일은 아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특별법이 일몰법이라 2023년에 폐지된다고 해서 그 때부터 진짜로 문화도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문화중심도시에 귀명창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길게 돌려서 말했다. 문화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시민, 예술의 깊이를 이해하고 외지인들에게는 문화예술을 설명할 정도의 시민들이 문화도시의 귀명창이다. 귀명창이 판소리의 역사는 물론 그 깊은 맛을 알 정도로 연구하고 찾아다녀야만 명창 소리를 듣듯이 광주시민이 모두 문화도시, 문화와 예술의 귀명창 같은 시민이 되는 날, 문화와 예술을 밥 먹듯이 찾아다니고 사랑에 빠진 날이면 아마 좀 더 문화도시에 가까이 가있게 될 듯하다. 문화재단이 하는 일이 귀명창을 만들고 찾는 일이다. 우선 이번 주말이라도 내 곁의 예술인, 내 곁의 문화시설, 내 곁의 문화 현장으로 달려 나가보자.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