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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한국의 곡창지대’라 불리는 만큼 비옥한 토양과 지리적 여건, 풍부한 일조량은 쌀·채소·과일 등 각종 농산물의 생장을 도운다. 게다가 서해와 남해를 접한 리아스식 해안과 미네랄이 풍부한 갯벌은 신선하고 질 좋은 해산물의 보고가 된다. 좋은 재료가 기본이고, 그에 더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조리법과 손맛이 어우러지니 어찌 맛이 없겠는가.
남해안의 생선은 동해안의 생선보다 맛이 깊고 찰지다. 입맛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린다. 낙지 하나만 봐도 그렇다. 물속에서 자란 꽃낙지와, 뻘에서 각종 미생물과 갑각류를 먹고 자란 뻘낙지는 식감과 풍미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남도에는 오미(五味)가 있다. 들녘에서 자란 벼가 전하는 단맛, 인동초의 쌉쌀한 쓴맛, 구례 산수유의 청량한 신맛, 천일염이 전하는 짠맛, 그리고 옛가락 속 구수한 맛.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구수한 맛이 전남의 음식과 문화 속에 녹아 있다. 남도의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한국 식문화의 뿌리로 작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음식은 깊은 맛과 풍부한 영양을 지녔다. 오랜 시간 숙성된 장, 발효를 거친 젓갈과 간장, 양념 하나에도 정성과 시간이 담겼다. 재료만이 아니라 조리 과정 하나하나에도 혼이 실린다. 그리하여 참맛이 된다.
전남의 젖줄인 영산강을 따라 7개 시·군이 펼쳐져 있다. 담양에서 시작해 화순, 나주, 함평, 무안, 영암, 목포까지. 그 강을 따라 전남의 음식문화도 흐른다.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이다. 대통밥과 죽순요리는 담양의 상징이다. 화순은 콩이 주인공이다. 흑두부, 콩비지, 사평천 다슬기로 끓인 수제비와 된장찌개가 밥상을 채운다. 나주는 영산포 홍어의 본향이다. 신안 흑산면 영산도에서 이름을 얻은 홍어는 삭힘을 거쳐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나주곰탕은 미군정 시절 소고기를 군납한 뒤 남은 부속고기를 활용한 것이 시초로 전해진다.
함평은 함평천지의 들녘에서 나는 찰진 쌀 위에 생고기를 얹어 비빈 장터 육회비빔밥이 유명하다. 무안은 세발낙지의 고장이다. 망운 탄저만 갯벌에서 잡은 낙지를 활용한 탕탕이, 호롱, 초무침 등이 대표적이다. 영암은 영산강 하구의 기수역에 위치해 숭어, 장어가 특산이다. 숭어알로 만든 어란은 조선시대 임금님의 진상품으로도 올랐다. 지금은 하굿둑으로 인해 어족 자원이 줄었지만, 그 명성은 여전하다.
이제는 농경지 보전만이 능사가 아니다. 강물의 흐름이 막히면 생태계도, 식문화도 고립된다. 다양한 어종이 민물과 해수를 오가며 생태계를 복원하고, 요트가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르네상스 시대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목포는 전남 농산물과 수산물이 집결하는 ‘맛의 집산지’다. 여기서 남도의 백반 문화가 시작됐다. 30여가지 반찬이 한 상 가득 오르는 남도 백반은 어느 도시에서도 보기 어려운 가성비와 정성이 담겨 있다. 이 남도 백반이 오늘날 한정식의 원형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남을 출장지로 찾는 타지역 공무원이나 기업인들 중에는 “값싸고 푸짐하게 잘 먹을 수 있어서”라는 이유를 드는 이들도 많다.
맛은 결국 문화다. 전남에는 수많은 문화들이 스며 있다. 유배 문화, 선비 문화, 농업 문화, 한의 문화, 수묵화와 남종화, 섬의 문화, 판소리와 예술, 의병과 이순신 장군의 정신까지. 전남은 오래된 문화의 향기가 자연과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 각기 다른 문화들은 각기 다른 ‘맛’을 품고 있다. 삶은 단맛만이 전부가 아니다. 때로는 쓴맛도, 신맛도, 짠맛도 있다. 전남의 문화와 음식을 음미하다 보면, 그 모든 맛이 어우러져 신비롭고 절묘한 조화의 향연을 이룬다.
AI에게 물어본다. ‘전남의 맛과 멋은 무엇이고, 어떤 냄새가 나는가?’
아마도 AI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해남 해창 막걸리 한 사발에 흑산 홍어무침을 안주 삼고,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천사의 섬 신안으로 뱃놀이 떠난다면 이보다 더 맛있고 멋진 곳이 또 있을까.’
전남은 정말 맛있는 곳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