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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식민역사박물관 명예관장인 심정섭씨가 31일 면화(솜) 공출명령서와 가마니 공출명령서 등 2점을 공개했다. 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
31일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식민역사박물관 명예관장인 심정섭씨(82·광주 북구)는 면화(솜) 공출명령서와 가마니 공출명령서 등 2점을 공개했다.
1937년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이듬해 ‘국가총동원법’을 공표해 조선의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후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한 잔혹하고 집요한 일제의 수탈이 시작됐다. ‘조선에 있는 것은 가져가고, 없는 것은 만들어서라도 가져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대표적인 공출 품목은 식량(쌀), 면화(솜), 가마니(비료 등) 등이었다. 심지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제기인 놋그릇이나 숟가락까지 빼앗아 총탄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일제의 쌀 증산 독려로 인해 풍년이 들었지만, 대부분 군용미로 공출한 탓에 조선인이 먹을 것이 없었다.
굶주림에 못 견딘 조선인들은 산에 올라 칡뿌리를 캐거나 풀뿌리,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는 등 초근목피로 연맹, 이른바 ‘풍년 기근’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심 명예관장이 공개한 면화(솜) 공출명령서는 전남 영암군수가 1940년초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에 거주한 김태환에게 발송한 것이다. 면화 공출명령서의 크기는 가로 9.5㎝, 세로 13㎝이다.
공출명령서 전면에는 ‘면업보국’이 적혀있다. 후면에는 ‘소비엄금’이라는 표어와 면화재배 면적, 공출명령 수량이 기재돼 있다. 수량은 141근(84.6㎏)이다.
공출의무자가 지켜야할 준수사항도 적시됐다.
△면화증산과 가정의 소비절약은 후방국민의 책무이다 △면화를 판매할 때 반드시 면화공출명령서를 면사무소 직원에게 제출한다 △생산면화는 반드시 공출수량 이상으로 재배해야 한다 △공출명령서에 적힌 수량을 반드시 지킨다. 만약 공출수량을 위반하면 엄벌에 처한다 등이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이 공출 기일을 위반하면 주재소에 끌고가 모진 고초를 당하게 만들었다. 순사를 대동해 공갈·협박했고, 나쁜 조선인으로 내몰아 각종 불이익을 줬다.
공출 수량을 위반하거나 의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하거나 강도 높은 노역을 시켰다. 탄광에서 일하는 노무자를 우선 징집 대상으로 분류해 군대로 차출하고, 자녀들의 학교 진학을 막는 등 각종 불이익을 줬다.
가마니 공출명령서는 1943년 11월 전북 익산군 낭산면장과 낭산 경찰관 주재소(파출소) 수석(주임)이 낭산면 석공리에 거주한 김윤만에게 보낸 것이다.
명령서 크기는 가로11㎝, 세로 14㎝이다. 공출기간은 1943년 12월10일부터 1944년 3월말까지이며, 공출 수량은 쌀 가마니 10매(개)와 비료 가마니 40매로 총 50매이다.
심 명예관장은 “일제가 군량미와 군복을 충당하기 위해 가마니와 면화의 공출을 집요하게 강요했다”면서 “공출명령서에 일제의 주도면밀한 강압과 착취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일제는 ‘고도국방체제국가’라는 안보개념을 표방하며서 조선인의 경제와 의식주 생활을 극도로 통제했다”면서 “심지어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거해 자기중심주의적 역사를 해석했다”고 비난했다.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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