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도시 전체를 시험장으로
검색 입력폼
취재수첩

[취재수첩]도시 전체를 시험장으로

이승홍 경제부 부장

광주 전역(500.97㎢)이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로 지정됐다. 200대 규모 차량이 투입되고, 규제 특례와 재정·세제 지원이 동시에 적용된다. 특정 구간이 아닌 도시 전체를 실증 공간으로 설정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기술 검증의 범위를 넓힌 대신, 실험의 조건도 그만큼 복잡해졌다.

구성은 명확하다. 현대자동차,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라이드플럭스가 각각 완성차, 대중교통, 물류 영역을 맡는다. 차량에는 E2E(End-to-End) 인공지능 기반 자율주행 체계가 적용된다. 도로 위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이를 다시 주행에 반영하는 구조다. 기존의 구간 단위 실증이 ‘기능 확인’에 가까웠다면, 이번 시도는 도시 환경 전반에서의 ‘운영 가능성’을 검증하는 단계다.

문제는 기술 자체보다 적용 환경이다. 도시 단위 실증은 교차로, 골목길, 불법 주정차, 보행자 이동 등 예측이 어려운 변수들을 모두 포함한다. 특히 생활권 도로에서는 돌발 상황의 빈도가 높고, 교통 흐름도 일정하지 않다. 자율주행 기술이 이 복합 환경을 안정적으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실증은 곧바로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기술 성능보다 운영 안정성이 먼저 확인돼야 하는 이유다.

규제 완화도 같은 맥락에서 점검이 필요하다. 이번 사업에는 ‘AI 자율주행차 메가특구’ 구상이 적용되면서 제도적 제약이 대폭 줄어든다. 다만 규제를 푸는 것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 보험 적용 범위, 긴급 상황 대응 절차 등 기본적인 운영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실증 확대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제도는 속도를 뒷받침해야 하지만, 동시에 위험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실증 이후의 단계도 중요하다. 정부는 이번 사업을 산업 전환의 기점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실증만으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관련 부품과 소프트웨어 기업이 함께 들어오며, 시험·인증 체계가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자율주행 기술은 단일 기업이 아니라 복수 산업이 결합된 구조이기 때문에, 특정 분야만으로는 확장이 어렵다.

광주시는 인공지능과 미래차 산업을 도시 전략으로 설정해 왔다. 이번 실증도시는 그 연장선에 있다. 조건은 갖춰졌지만, 성과는 별도의 문제다. 데이터 축적, 안전성 검증, 제도 정비, 산업 연계가 동시에 작동해야 실증이 의미를 갖는다. 도시 단위 실증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운영 체계와 산업 기반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승홍 기자 photo25@gwangnam.co.kr        이승홍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